▲ 60여개 시민단체가 함께한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규명·책임자처벌·명예회복·비정규직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학PD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비정규직 스태프 인건비 인상을 요구하다 14년 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된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원인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로 드러났다. 고인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 패소 직후인 올해 2월 목숨을 끊었는데, 소송 과정에서 동료들의 증언과 사측의 소송 방해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사실이 확인됐다.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위는 2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개월간 진행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는 “프리랜서 지위였던 고인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며 “그의 사망은 해고 및 사측의 소송 방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과 유족·언론노조·시민단체 추천위원으로 구성됐다. 지난 2월 출범해 사망 경위와 사내 비정규직 실태를 조사했다.

증인에게 경위서 제출 요구, 사실관계확인서로 증언 뒤집어

이날 공개된 진상조사보고서로 고인이 소송 과정에서 겪었을 고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소송에서 청주방송은 “고인이 인건비 인상 요구안을 거절당해 자발적으로 퇴직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진상조사위가 증언으로 확인한 결과 기획제작국장은 고인에게 맡고 있던 <쇼 뮤직파워> 프로그램에서 손을 떼라고 통보했다. 1심 증인신문에서 기획제작국장은 “(고인이) 다른 데 직업을 구해 놓았다고 말해서 그만두게 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회사 장비를 이용해 촬영했는데도 청주방송측은 고인이 구입한 장비로 제작했다고 증언했다.

증언자를 압박한 정황도 드러났다. 진상조사위는 “증인 2명이 고인의 노동자성을 증언할 수 있는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한 이후 국장단이 참여하는 간부회의에서 경위 파악을 지시해 해당 증인들이 경위서를 작성했고, 청주방송이 이들을 회유하고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청주방송의 압박은 효과를 봤다. 뒤에 증인 중 1명이 법원에 제출한 사실관계확인서에는 “이재학을 만나 서명해주었으나 사실관계 내용을 자세히 확인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생각해 서명을 해 줬다”며 “진술서 서명 후 이재학에게 진술서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문구가 있다. 법원은 이 사실관계확인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진상조사위는 “동료를 면접조사하고 고인의 근무실태, 판례를 검토한 결과 고인은 14년간 청주방송에서 일했고 상급자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밝혔다. 김혜진 진상조사위 위원장은 “고인은 프리랜서를 대표해 임금인상을 요구해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받았다”며 “사실상 부당해고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청주방송 상시·지속업무에 비정규직 남용”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사측의 공식 사과·책임자 조치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을 담은 이행요구안이 들어갔다. 지나치게 높은 비정규직 비중 때문이다. 청주방송은 올해 3월 기준 비정규 노동자 비중이 35%나 된다. 진상조사위는 “방송업무만 15~20년 가까이 수행한 프리랜서가 직군별로 다수 존재하는 것은 드문 사례”라며 “청주방송이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정규직 임금이 10년 이상 동결된 상태로 경력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아 다른 지역방송 대비 비정규직 노동조건이 열악하다”고 비판했다.

진상조사위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자성이 있거나 불법파견으로 사용하는 직군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주문했다. 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직장내 괴롭힘과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기적인 교육과 성평등위원회 설치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박홍근 의원은 이날 “방송스태프 처우개선을 위해 고용노동부·방송통신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가 함께 TF를 가동하고 당·정·청 민생현안회의에서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겠다”고 약속했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노조 교섭안에 포함하는 내용의 안건을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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