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우리나라에서 2001~2017년까지 매년 평균 2천366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로 일본·독일의 5배다.

자연재해는 막을 수가 없지만 산업재해는 막을 수 있다. 삼성반도체 산재 사건,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휴대전화 공장 메탄올 실명 사건,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석탄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사고, 이천 물류센터 산재, 광주 파쇄기 협착 사망사고 등이 최근에 일어난 안전·산업 관련 재해다. 국가적 비극이다. 아직 입법이 미비해서 이런 비극이 계속 반복되고 있고 앞으로도 또 일어날 것이 뻔히 예견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대재해 때문에 내는 과태료, 벌금 또는 경제적 배상금이 산업안전을 위한 설비 투자비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자발적 선의 외에는 개선 동기가 없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인이 납부한 평균 벌금액은 448만원이라고 한다.

영국·독일·캐나다·호주에는 ‘기업살인법’이 있다. 기업의 안전상 문제로 인한 산재를 기업범죄로 보고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살인에 준해 처벌한다. 우리 형법에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있기는 하나 일반적인 형법에서 요구하는 인과관계 책임을 기업에 직접 묻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대개는 중간관리자 개인이 처벌되는 선에서 정리된다. 이렇게 꼬리 자르기식으로 사건을 종결하면 해당 기업의 구조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기업이 휘청할 정도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법도 필요하다. 지금은 피해자가 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기업에 대해 민사법원이 유의미한 손해배상 선고를 내리기 어렵다. 기업을 상대로 승소한다 하더라도 노동자의 치료비, 향후 노동을 못하게 된 기간에 대한 임금상당액,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정도를 기업이 부담하라고 판결이 나온다. 이 정도 금액은 기업 입장에서 ‘푼돈’일 수밖에 없다. 단 한 명의 산재 피해자가 없게 공장을 싹 뜯어고칠 정도로 위협이 될 손해배상액을 기업에 물릴 법률이 필요하다.

아울러 담당 국가기관과 공무원에 대한 형사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중대재해 이면에는 늘 국가의 부실한 감시·감독 책임이 있다. 그런데 민사소송으로 가게 되면 피고 ‘대한민국’은 책임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일반 민·형사 법률에 따를 때는, 결과 발생에 대한 공무원·기관의 직접 개입 또는 악의적인 업무태만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법상 직권남용 또는 직무유기의 고의·중과실을 피해자나 검사가 적극 입증해야 하는 것과 달리 중대한 산재만큼은 관련 공무원·기관 스스로가 충분한 감시감독·예방 조치를 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입법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17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발의안을 포함해서 총 4건이 국회 계류 중이었다가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고 얼마 전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다시 발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중대재해 사건 때마다 피해자 또는 가족들을 만나 함께 눈물 흘리고 제도적 개선을 강하게 약속한 바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이천 물류센터 산재를 언급하면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의 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하고 징벌적 경제제재까지 가하겠다고 공언했다.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국민정서와 사고예방 실효성 측면에서 산재에 대한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논의를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턱없이 부족한 근로감독관을 확충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기를 바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지방정부 노동특별사법경찰권 법률 제정도 의미 있어 보인다.

기업은 이윤추구가 목적이므로 사회적 통제 없이 경영책임자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만을 기대하면서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 사고는 반드시 난다. OECD 산재 사망률 1위 대한민국이 그 증거다.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길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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