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보수언론이 재벌 민원을 기사로 쏟아 내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대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쏟아 낸다고 하소연하며 주요 지면을 채웠다.

동아일보는 지난 11일 1면 머리기사로 ‘정부, 경영권 흔드는 법안 쏟아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기업 규제를 담은 상법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정부를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생존조차 위협받고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기업 옥죄기’ 법안을 쏟아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기업 관계자 말을 옮겼다. 동아일보는 이날 5면에도 ‘경영권 흔들기 입법 드라이브’라는 문패를 달아 한 면 모두를 할애해 살뜰하게 재벌 입장을 대변했다. 조선일보도 11일 1면에 ‘文, 평등경제 외친 날, 기업규제법 쏟아낸 정부’라는 머리기사로 입법예고된 상법과 공정거래법을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3면엔 ‘투기자본끼리 손잡으면, 삼성계열사보다 의결권 더 세질 수도’라는 제목으로 삼성 걱정에 안절부절못했다.

동아일보는 하루 뒤인 12일 1면 머리기사에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기업규제 입법 드라이브와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기업 인허가 절차 간소화 발언이 서로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의 엇박자 비판에 머물지 않고 더불어민주당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도 ‘과격 노조활동 부추기는 법안 … 어느 기업이 한국 유턴하겠나’(6월11일 4면)며 비난했다.

보수언론 눈엔 코로나19 위기로 곳곳에서 해고되거나 일거리가 줄어 힘겹게 2020년을 보내는 소수자보다 삼성 같은 재벌 이권이 줄어드는 게 더 큰 걱정이다.

이 와중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당내에 “경제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오직 국민 편에서 선도적으로 정책을 이끌어 정책경쟁을 주도하겠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11일자 10면에 “김종인 ‘경제혁신위 만들어 정책경쟁 주도’ 위원장엔 윤희숙”이란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기사 옆엔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들이 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인 사진도 곁들였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이날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무릎을 꿇고 ‘8분46초’간 묵념했다. 이들은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성차별에 반대한다’는 구호가 적인 팻말을 저마다 들었다.

선거철이면 길거리에서 무릎 꿇고 ‘잘못했다’는 보수정당 의원들 모습을 자주 봤던 터라 좀 식상했지만 중앙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이 ‘그림 된다’며 이를 보도했다.

한국일보도 12일자 5면에 무릎 꿇은 미래통합당 의원들 사진을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이 사진의 관련 기사엔 “‘모든 차별에 반대’ 침묵시위 하고선 … 성소수자엔 표정 바꾼 통합당”이란 제목을 달았다. 한국일보는 로텐더홀에서 무릎 꿇고 침묵시위한 9명의 미래통합당 초선의원 모두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해 활동할 계획을 물었지만 “9명 전원이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해 활동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성 정체성·장애 여부·병력·외모·출신 국가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대부분 동의하지만 ‘성 정체성’에서 갈린다.

차별금지법은 14년째 입법 시도 단계에서 좌절했다. 17·18·19대 국회에서 연달아 발의됐지만 개신교의 ‘동성애 조장’이란 주장 때문에 20대 국회에선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일보는 “10일 로텐더홀 시위에 참여한 의원들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해 어김없이 ‘나중에’라는 꼬리표를 붙였다”고 보도했다.

우리 언론은 이처럼 정치인이 뭐만 하면 받아쓴다. 그들이 정치쇼를 한 건지 아니면 진정성을 담아 말하거나 행동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들의 침묵시위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그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어 낸 한국일보 보도는 돋보였다. 기자는 원래 질문하는 사람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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