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연구 활동가

“전 국민 고용보험이냐, 기본소득이냐.”

차기 대선 주자들까지 가세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안전망’에 대해 연일 떠들어 대고 있다. 그런데 정작 20대 국회는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고용보험을 확대하기 위한 첫 단추로서의 특수고용직 고용보험법 적용 법안마저 소화를 못 시키고 21대 국회로 넘겨 버렸다. 당시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 위원장이던 임이자 미래통합당 의원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범위가 너무 넓고 사업주들의 반대가 있다면서 21대 국회로 넘기자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였던 한정애 의원은 자신이 21대에도 환노위 활동을 할 것이라며 이에 동의했다.

그리고 21대 국회 개원 직후인 지난 9일 한정애 의원 발의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미 2년 전에 노·사·정 사회적 타협을 통해 마련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논의할 시간이 없다”며 폐기해 버린 한 의원의 행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21대 국회에 같은 내용을 법안을 발의하겠지 하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번에 한 의원이 발의한 법안(한정애안)은 고용보험위원회가 어렵게 마련한 법안을 대폭 후퇴시켰다.

한정애안은 고용보험법을 적용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는 계약(노무제공계약)을 체결한 사람으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 필요성이 있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원래 고용보험위 의결안에는 없던 ‘노무제공계약 체결’ 문구가 덧붙여졌다. 짧은 문구지만 이것이 추가됨으로써 생기는 변화는 엄청나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사업주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으면 고용보험 적용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상당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사업주와 아무런 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고 있다.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이 적용되는 특수고용 노동자 중에서도 약 40%가 사업주와 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고 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서도 대리운전·퀵서비스·음식배달대행·화물운송처럼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40% 이상이 “명시적인 계약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더구나 많은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들과 실제 이들을 자신의 사업에 사용하는 사업주 사이에는, 인력파견업체에 다름 아닌 관리업체들이 끼어 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타다 드라이버도 형식적 계약서는 관리업체들과 쓰지만, 실질적 통제는 플랫폼업체가 했다고 중노위는 인정했다.

한정애안대로라면 특수고용 노동자가 사업주와 노무제공계약서를 써야만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고, 계약서를 중간 관리업체와 쓰게 되면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플랫폼업체는 고용보험법상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쪽이건 사업주들은 고용보험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노무제공계약 체결’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할 것이다. 결국 또다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계약의 체결’을 증명하지 않으면 고용보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자 한 의원측은 “계약을 제대로 맺지 않은 경우 먼저 정부로부터 구제받도록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고, 법 개정은 노무계약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고집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처한 특수고용·프리랜서들에게 긴급지원금을 주려 해도 용역계약서·노무미제공 확인서 같은 것을 받지 못해 포기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현실을 정녕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법안 발의자인 한정애 의원은 환노위 대신 보건복지위원회로 가 버렸다. 하지만 장철민·이탄희·송옥주·김경협·김주영·남인순·이수진 의원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23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공동발의자 대부분이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노총이 공동선언한 ‘노동존중 국회의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에 묻고 싶다.

2018년 노사정 합의안인 고용보험위 의결안에서 후퇴한 이 법안이 여당·정부 법안인가? 특수고용 노동자 대부분을 보호하지 못할 법안이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의 실제 모습인가?

노동권연구 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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