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합니다. 아무도 거저 장미를 주지 않습니다. 구걸을 멈추고 단결할 때 장미를 갖습니다.”

켄 로치 감독의 2000년 작품 <빵과 장미>에서 노동운동가 샘(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대사 중 한 대목이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뜻한다. 여성노동자, 비정규 노동자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노동을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이만큼 대변하는 말이 또 있을까.

권리행사는 존재를 인정받는 데서 출발한다. 비단 국가에서뿐만 아니라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경북대에서 빵과 장미를 원하는 이들이 한 달 넘게 교수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고 있다. 7월 총장선거를 앞둔 경북대에서 “투표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비정규 교수들이다. 농성은 15일로 34일째로 접어들었다.

15일 대구 북구 경북대에서 만난 이시활(53·사진) 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장은 “교육과 연구의 당연한 주체인 비정규 교수는 총장선거에 단 한 표도 행사할 수 없다”며 “이게 상식적이냐”고 되물었다. “경북대에서 비정규 교수의 강의담당 비율이 40%”라며 한 말이다.

그는 “교육공무원에 준하는 처우를 해 달라는 것도, 월급을 인상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며 “대학 교원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고, 교원으로서 참정권을 달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정규 교수 강의는 40%, 권리행사는 0%”

- 경북대 총장선거 진행 경과는. 선거를 앞두고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나.
“지난 10일 총장선거 공고가 난 상황이고 다음달 15일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총장 후보로 나갈 분들의 입후보 등록절차가 곧 있을 것이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공간이다. 그런데 비정규 교수들은 총장선거에 단 한 표도 행사할 수 없다. 경북대에서 교원공무원인 정규직 교수의 강의담당 비율은 60%, 교원공무원이 아닌 비정규 교수의 강의담당 비율은 40% 정도다. 이렇게 많은 비정규 교수가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 연구의 당연한 주체인 비정규 교수는 총장선거에 단 한 표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다. 강사는 이미 교원으로서의 법적 신분을 부여받았다. 고등교육법에 명백하게 규정됐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일명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에 ‘교원은 총(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와 강사’로 명시돼 있다. 1977년 유신체제에서 교원 지위를 박탈당한 이후 42년 만에 강사가 법적 지위를 회복했다. 우리는 지금 교육공무원에 준하는 처우를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월급을 인상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대학 교원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고, 교원으로서 참정권을 달라는 것이다. 이런 요구가 터무니없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학생들의 득표반영비율이 낮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장이므로 당사자는 교원과 학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원인력인 직원과 조교의 총장선거 득표반영비율이 15%인 반면, 교원인 비정규 교수 비율은 0%고, 학생들은 5%에 불과한 것을 정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규직 교수가 80%를 차지하고 있다. 독점이다.”

- 법적 교원 신분을 확보했지만 형식적인 교원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인 교원 권리를 보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고등교육법에서 법적 교원지위를 회복한 비정규 교수인 강사가 대학에서 교원으로서 권리를 확보하고 학내 구성원으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대학기구 참여 등의 진정한 교원지위 획득, 둘째 대학의 장을 선출하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획득, 셋째 신분과 고용안정이다. 시간당 임금이 아니라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4대 보험 적용과 정규직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 교수회 농성을 하는 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 입장에서는 대학의 장을 선출하는 총장선거권을 쟁취하는 것은 강사가 학내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법적 교원 지위를 실질적으로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경북대 교수회 보수적, 1968년 이전 베를린 자유대 수준”

- 총장선거에 비정규 교수가 참여한 사례가 있나. 바람직한 총장 선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대학은 교원과 학생으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다. 학문 연구와 교육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존재할 수 없다. 대학 구성원으로서 의무 준수뿐만 아니라 대학 내 권리 행사에서도 동등한 존재여야 할 것이다. 대학이 정규직 교수의 일방적이고 봉건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아야 한다. 2020년 정규직 교수의 학칙기구인 경북대 교수회처럼, 52년 전인 1968년 독일의 베를린 자유대학은 독일의 타 대학과 같이 보수적이었으며 교수들의 권위주의가 만연했다. 1968년 이후 학생들은 학문공동체인 대학을 구성하는 3주체인 교수, 학생, 강사·조교·연구원이 동등하게 권리를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당시 독일에서 행정직은 별도의 노동조합으로 분류돼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학생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1969년 실시된 베를린 자유대학 총장선거에서 대학의 3주체는 각각 33.3%의 동등한 총장선출비율로 총장선거에 참여했다. 총장 선거에는 교수대표와 조교대표가 출마했으며, 당시 31세였던 조교 대표 롤프 크라이비히가 58%의 득표로 당선했다. 롤프 크라이비히는 4년 후 재입후보해 당선했다. 그가 학교 설립 이래 가장 명망받는 총장이 된 것은 대학 역사의 상징적 사건으로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다. 현재 경북대 교수회는 1969년 베를린 자유대학 총장선거가 남긴 소중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소송을 한다고 들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경북대 교수회는 경북대분회와 총학생회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선거를 진행하기 위해 위법적인 시행세칙을 제정했다. 교수회와는 더 이상 정상적인 대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경북대분회와 경북대 총학생회는 학내 구성원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교수회는 대화를 단절했다. 앞으로 법적 절차인 총장선거공고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신청과 총장임용후보자 선정규정 무효확인 소송을 통해 선정규정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고 개선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송에는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조 경북대지부도 참여하고 있다. 총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정규직 교수들도 다수 참여하고 있다. 소송에서 강사의 총장선거권 보장, 학생선거인의 득표반영비율 확대, 총장임용후보자 기탁금, 선거운동 방법 제한을 다투게 될 것이다. 총장선거 입후보 예정자를 포함한 정규직 교수 10명, 학생 10명, 강사 20명이 원고로 참여하기로 했다. 조만간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번 소송을 하게 돼 안타까움과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해야 할 학문공동체인 대학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해 법적 판단에 의존하게 된 모습이 경북대의 현주소다. 경북대가 지금이라도 소송 결과를 기다리기보다 총장선거를 연기하고 규정과 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임을 다시 한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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