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11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던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으로 마사회와 기수 간 불합리한 계약구조가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달 21일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는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기수들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성이 있다고 인정받은 것이다.

마사회 기수와 비슷한 처지지만 드러나지 않은 노동이 있다. 경륜선수 이야기다.

한국경륜선수노조는 3월31일 설립신고를 했다. 경륜선수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는다. 한국마사회·조교사·기수로 이어지는 경마장처럼 복잡한 계약관계가 아닌데도, 여태 설립신고증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경륜선수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볼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공공연맹 위원장 사무실에서 이경태(48·사진) 한국경륜선수노조 위원장 겸 한국경륜선수협회장을 만났다. 이 위원장은 25년간 경륜선수로 활약한 베테랑이기도 하다.

-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경륜선수와의 관계는.
“경륜선수들은 개인사업자로 공단과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공단이 선수 생존권을 쥐고 있다. 공단은 경륜선수 경기 주선권과 징계권을 가진다. 공단이 경기를 주선하지 않으면 선수는 경기를 뛸 수 없다. 출전정지 같은 징계를 내리면 받을 수밖에 없다. 선수는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돈을 벌 수가 없다. 출전수당을 포함해 수당이 소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단 눈치를 봐야만 하는 구조다.”

경륜선수는 1년에 평균 18경기를 뛴다. 하지만 이경태 위원장은 지난해 13경기를 했다. 가장 못 달리는 선수가 한 경기에 출전해서 받는 금액은 230여만원이다. 그는 5경기를 뛰지 못했으니 최소 1천150여만원을 벌지 못한 셈이다.

공단은 명확한 기준 없이 징계한다. 경륜·경정법 시행령 26조(경주장 등의 단속 등)는 경주사업자가 공정한 경주를 위해서 부적합 선수의 경주참가 정지나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징계가 이뤄지지만 위원회가 공개하는 결정 기준은 없다. 노조는 공단이 마음대로 결정하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 공단 징계가 부당한 경우도 있나.
“공단과의 친분 정도에 따라 징계가 차별적으로 내려지는 경우가 있다. 공단과 친한 한 선수는 음주운전 사실을 숨겼다. 동료선수 제보로 들켰는데 심의위 결과 2개월 출전정지만을 받았다. 그런데 노조와 친하다고 알려진 선수는 동료선수에게 ‘다 죽여 버려’라며 다소 거칠게 응원했다는 이유로 3개월 출전정지를 받았다. 음주운전보다 험한 말 한마디가 더 무거운 죄라고 할 수 없다.”

- ‘경륜선수들의 노조’로 불리는 한국경륜선수협회장인데도 노조를 만든 이유는.
“협회는 공단과 제대로 된 협상을 못한다. 2013년 경륜선수 협상단으로 나가 공단과 협상을 했다. 한 해 후보생 16명 받기, 교육기간 18개월 유지, 그만두는 이들에게 퇴직금 성격의 돈을 챙겨 주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2013년에만 지켜졌다. 공단측이 협상을 이렇게 흐지부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록을 남기는 협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협회가 그런 걸 요구했다가는 협상 테이블 자체가 엎어진다. 협회장은 선수들에게서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자리다. 조금이라도 받아 내기 위해 기록 없는 협상이라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 노조를 만들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노조가 요구하면 사측은 단체교섭에 나서야만 한다. 경륜선수들과 협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서류상 기록이 남는 협상을 하면 후배 선수들의 처우를 더 개선할 수 있다.”

- 설립신고증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도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 경기 중 사고가 나 부상회복 기간 동안 경기에 나설 수 없어도 최소한 생계는 보장받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경륜사업 소모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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