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파쇄기에 끌려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청춘이 삶을 마감해야 하나요. 21대 국회 첫 입법으로 모든 노동자와 피해 가족이 간절히 바라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도록 문재인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준비한 글을 읽어 내려가는 아버지의 음성과 손은 떨렸다. 읽다, 눈물을 참다, 편지 한 장 읽는데 한참이 걸렸다. 금속노조를 비롯한 39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고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의 한 장면이다.

지난달 22일 광주 하남산단의 한 목재 가공공장에서 일하다 파쇄기 점검 중 숨진 고 김재순(사망당시 25세)씨의 아버지가 함께했다. 아버지 김씨는 지난 2002년 일하다 파쇄기에 왼손이 크게 다쳐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의 아들은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산업재해도 대물림받았다. 형체도 없이 숨진 아들 앞에 그는 죄인이라고 했다. 김씨는 “못난 아비인 제가 아들의 죽음을 대신하고 싶다”고 흐느꼈다.

지적장애를 가진 김재순씨는 파쇄기 점검이라는 위험 작업을 홀로 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파쇄기 투입구에 덮개가 있었더라면, 파쇄기에 작업발판이 설치되고 안전장치가 있었더라면 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해당 공장은 2014년에도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노동자가 숨졌다. 김동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같은 사업장에서 반복됐다는 점에서 사업주 과실이 이번 산재사고의 원인임이 분명하다”며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몇백 만원 벌금만 물면 되는 현행 제도가 노동자를 또 죽였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고용노동부는 50인 미만 중소·영세 사업장에 대해 실질적인 안전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하라”며 “21대 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앞장서라”고 촉구했다. 강은미 의원은 11일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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