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연대노조가 8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기획위장폐업 집단해고 롯데택배 규탄,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8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에비뉴얼 앞. 울산에서 올라온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 노동자 네 명이 배송차량에 농성장을 차렸다. 두 명은 울산 신정대리점 소속으로 원청이 대리점과 계약을 해지하면서 9명의 동료와 함께 집단해고된 이들이다. 또 다른 두 명은 서울주대리점(현 울산울주대리점) 소속 노동자로 노조활동을 하자 롯데택배 울산지점이 무리하게 대리점 간 통폐합을 시도해 열악한 터미널 환경에서 일하게 됐다고 주장한다.<본지 6월5일자 2면 “롯데택배, 주차장 공터에 분류작업·하차 공간 뚝딱” 참조>

원청에 책임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지난 2일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권용성(39)씨는 미지급된 수수료를 요구하고 대리점 소장의 비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됐다며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차량농성 중이다. 원청이 직접 개입해 해고 사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대리점과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기사들이 원청 앞에 잇따라 농성장을 차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계는 ‘택배회사-대리점-택배기사’로 이뤄지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지적한다.

“추가지원비 100% 삭감”
원청 일방 통보에 속수무책


택배노동자는 원청과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맺지 않는다. 하지만 택배노동자의 노동환경은 물론 계약 여부(고용)까지 원청이 힘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롯데택배 신정대리점의 집단해고 사태는 원청과 대리점의 계약갱신 과정에서 발생했다. 신정대리점은 1년 단위로 롯데택배와 ‘대리점 계약서’를 맺어 왔다. 롯데택배는 신정대리점 계약만료일인 4월30일을 두 달 앞둔 2월21일 추가지원비를 절반으로 삭감하는 안에 대한 협조공문을 보냈다. 추가지원비는 건당 배송수수료 외 롯데택배가 대리점에 별도로 지급해 온 수수료다. 대리점 소장에 따라 사용처는 다르나 신정대리점 소장은 추가지원비를 포함해 기사들의 배송수수료를 산정했다. 추가지원비 삭감은 곧 배송수수료 삭감인 셈이다.

이후 롯데택배는 대리점에 더 큰 희생을 요구했다. 3월5일 “2020년 대리점 추가수수료(추가지원비) 지급 중단” 방침을 전달한 것이다. 원청의 제안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락한 신정대리점 소장은 같은달 25일 “대리점 역시 본사의 어려움을 함께 할 용의가 있어 조건에 수락하겠다”고 밝혔다.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해 달라는 제안도 함께 했다. 바로 다음날 원청은 “영업활동이 저조했다”는 새로운 이유를 들며 계약해지했다. 노조는 이런 정황을 들어 애초 원청이 신정대리점과 재계약할 의지가 없었다고 본다. 지난달 22일 최종적으로 롯데택배는 “재계약 날인요청에 대리점측이 돌연 입장을 변경하며 응하지 않았다”며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신정대리점측은 19일 회사에 “기사들의 반발이 강력해 사태 수습을 위한 충분한 시간 및 재검토”를 요청했다.

노조는 “울산 택배노동자의 문제가 단순히 울산의 문제가 아니며 재벌택배 회사의 갑질 문제는 롯데택배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택배회사는 갑질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원청이 책임져야”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택배노동자들은 고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끝나면 계약이 해지되는 신분으로 언제든지 고용단절 위기를 겪는다”며 “일정 단위로 계약이 자동 갱신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노조를 만들려 하거나 실제 만들면 대리점이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청-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구조로 계약서상으로 원청과의 관계가 전혀 없다 보니 대리점이 알아서 또는 (원청이) 대리점을 시켜서 택배기사를 탄압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원청이 책임을 지게 구조를 바꾸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 등을 통해 택배기사와 대리점 간 업무위탁계약 기간을 6년으로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기사와 대리점 소장 간의 오해를 풀기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며 “(권용성 기사의) 사번을 삭제하지 않고 언제든지 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택배측에 관련 사실을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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