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김미영 기자
교육부가 최근 초등돌봄교실과 방과후교육 프로그램을 학교가 운영하도록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이틀 만에 철회했다. 교원단체가 “학교는 보육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라며 “방과후학교(돌봄교실 포함)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라”고 요구하면서다. 20년 넘도록 법률 근거 없이 운영돼 온 방과후강사와 돌봄전담사들은 “경솔한 교육부가 상처와 분노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교원단체에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논란을 학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으로 단순화할 수 있을까. 이해관계 당사자 간 이견이 발생한 원인을 찾기 위해 7일 <매일노동뉴스>가 전교조·학교비정규직노조·방과후강사노조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와 돌봄전담사, 방과후강사는 한목소리로 정부 주먹구구식 정책을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법적 근거 없이 ‘사교육비 절감·교육격차 완화·특기와 적성능력 신장’ 등 다양한 목표를 내세워 방과후학교를 확대·운영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과 맞벌이로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초등학교 1~2학년을 위한 초등보육교실(현 돌봄교실)도 2004년 생겨났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학교 인력·재정은 투입되지 않았다. 학교 안 주요 구성원인 교사의 불만을 낳고, 학내 구성원 간의 갈등을 초래한 배경이다.

“업무 과중에 교실 부족, 쫓기듯 수업”

교사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과중이다. 전교조는 지난달 21일 ‘개정에 관한 의견서’를 통해 “방과후학교 기능을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초중등교육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적지 않은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법안 개정에 반대했다.

방과후학교는 1995년 각 학교가 수익자 부담으로 학생의 흥미와 학교 실정에 맞는 교육활동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처음 도입됐다. 방과후강사 강사료는 수혜자인 학부모가 내는 수익자 부담이었지만, 그 외 모든 행정업무는 학교 내 구성원 교사에게 전가됐다.

방과후학교 운영·관리를 전담하는 교사는 방과후학교 수요조사, 학부모 안내문 발송, 강사 구인·채용, 만족도 조사, 강사 급여 지급, 자유수강권(저소득층 자녀에게 제공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및 초등돌봄교실 수강권) 대상자 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다. 문제는 교사들은 담임업무나 정규교육과정 수업도 함께 수행한다는 점이다.

최선정 전교조 정책기획국장은 “방과후학교가 네 학기로 나눠져 운영되다 보니 매번 아이들에게 새로이 신청서를 받고, 강의료를 받는 일이 반복된다”며 “큰 학원 하나를 한 사람이 운영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사들 입장에서는 가르치러 학교에 왔는데 왜 학원을 운영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전했다.

재원이 한정돼 갈등을 겪기도 한다. 교실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교육부가 돌봄교실 조성을 위한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고 하지만 수요를 따라가기는 역부족이다. 방과후전담교실이나 돌봄교실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경우 정규교육이 이뤄지는 교실에서 불가피하게 수업이 이뤄진다. 초등학교 교사에게 교실은 업무공간이기도 한데 교실을 빠르게 비워 줘야 하는 일이 생긴다. 방과후강사노조와 학교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감정싸움이 생긴다고 한다.

이 같은 교사들의 불만은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지만 교육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교육부를 향한 교사의 불신은 커질 대로 커졌다. 최선정 정책기획국장은 “공문 한 장 내려보내 학교에 일을 시켜 온 구조가 바뀌겠냐”며 “교육부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더 많은 업무가 학교에 부여될 테지만 그에 상응하는 지원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전교조를 포함한 교원단체가 돌봄과 학교교육을 분리해 지방자치단체가 돌봄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불안정한 신분, 양질의 교육 어려워”

그렇다고 방과후학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을 무작정 미룰 수는 없다. 현재 방과후학교는 17개 시·도 교육청과 한국교육개발원이 공동 제작한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과 ‘방과후학교 운영 길라잡이’ ‘초등돌봄교실 운영 길라잡이’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법적 강제성은 없다. 균일한 형태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최은희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부장은 “돌봄교실이 16년 동안 아무런 근거 없이 운영되고 있다”며 “운영에 참고할 만한 것은 운영 길라잡이뿐인데 지키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단일 학급 내 인원을 20명 내외로 구성하도록 안내하지만 기준을 훨씬 초과한 인원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고 증언한다.

돌봄전담사와 방과후강사의 불안정한 신분은 양질의 교육을 더욱 어렵게 한다. 방과후강사는 학교별로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독서논술·미술공예·영어 등을 가르친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하지만 3개월 단위 초단기계약을 하기도 한다. 최저입찰제로 학교가 민간위탁업체에 방과후학교 업무를 맡기는 경우 부작용은 더욱 크다. 강사료를 일방적으로 깎기 어려우니 민간위탁업체는 저가의 공구(학습교재)를 제공하며 이윤을 남기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강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돌봄전담사의 경우 2016년부터 교육공무직으로 전환됐다. 교육감에게 직접고용되는 형태다. 하지만 하루 4~7시간 동안 일하는 시간제 근무는 여전하다. 학교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올해 4월 현재 8시간 일하는 전일제 근무자는 전체 돌봄전담사 1만1천718명 중 16%에 불과하다. 최은희 정책부장은 “아이들과 함께할 활동을 준비하고, 간식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업체를 방문하는 등 행정업무를 많이 하는데 이런 일을 할 준비시간은 주어지지 않고 오직 보육시간만 산정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비전 제시하고 이해당사자 합의 이끌어 내야”

지난달 초·중등교육법 입법을 보류한 교육부는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입법예고 의견수렴 외 무슨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지는 공식화하지 않았다.

최선정 정책기획국장은 사견을 전제하며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돌봄 공공성 강화 △교사 본연의 업무 보장 △돌봄전담사와 방과후강사 고용안정이다. 그는 “교원의 본래 업무인 수업·교육과정·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교육부가 만든다면 굳이 교사들이 학교에 돌봄 기능이 있네, 없네 하며 따질 이유가 없다”고 못 박았다.

정석 전교조 광주지부 초등위원장은 “교원의 업무는 가르치는 일이니 이에 집중할 수 있게 업무 칸막이를 치고, 동시에 학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며 “교육부가 학교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해관계 당사자가 모두 동의할 때 합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은희 정책부장은 “학부모들은 학교 안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가 돌봄업무를 맡기를 바란다”며 “할 수 있는 방법은 교사들의 업무를 줄이고, 방과후 관리업무를 개별 학교가 아닌 교육청 내 별도 부서나 기구를 만들어 운영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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