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서울 강남구 삼성 사옥 앞 철탑 위에서 사계절을 보낸 김용희씨가 지난달 29일 삼성과 합의 끝에 내려왔다. 355일 만의 일이다. 언론은 앞다퉈 이 소식을 전했다. 기사는 대부분 82년 입사해 95년 해고된 과정과 그 후 25년간 김씨에게 벌어진 끔찍했던 순간들을 되짚었다.

한겨레는 ‘1년 만에 땅 디딘 노동자, 마지막 고공농성자 되길’, 경향신문은 ‘355일 만에 땅에서 웃다’, 중앙일보는 ‘삼성 해고노동자 355일 만에 강남 철탑 농성 끝내’, 한국일보는 ‘355일 만에 땅으로’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기사는 이상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30일 14면에 ‘삼성, 355일 철탑농성 해고 근로자와 합의’란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했다. 제목의 주어가 355일 농성한 김용희씨가 아니라, ‘삼성’이다. 조선일보 제목대로 하면 “삼성이 김씨와 합의했다”가 된다. 김씨 농성 마지막 기사의 제목을 ‘삼성’으로 잡은 언론사는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조선일보는 농성 해제도 독특하게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삼성이 노조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삼성이 후진적인 노조운동에 굴복해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고 했다. 얼핏 보기엔 양비론 같다. 물론 이런 평가를 내비친 쌍따옴표 안의 화자(話者)는 ‘재계’다. 355일 농성한 당사자를 포함해 노동진영의 평가는 기사 어디에도 없다. 양비론이 아닌 일방적 삼성 편향 기사다.

세계일보 기사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세계일보는 이 소식을 지난달 30일 17면에 짧게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이 기사를 종합면도, 사회면도 아닌 ‘사람면’에 실었다. 사람들 동정이나 행사를 다루는 지면이다.

세계일보 기사엔 ‘檢, 이재용 부회장 사흘 만에 재소환’이란 제목이 달렸다. 이 부회장 재소환을 다룬 기사 뒤에 ‘한편’이란 접속사로 김씨의 합의 소식을 전하는 데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다음날 찾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던 인천공항공사 검색요원 정규직 전환을 놓고 조선일보가 ‘노사가 (정규직) 전환에 한목소리로 반대한다’고 보도했다(5월28일 6면 ‘비정규직 제로 1호 인천공항公, 靑 검색요원 1500명 정규직 전환 압박말라’).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 ‘노사가 전환에 반대 한목소리’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다. 개항 이래 간접고용 노동자를 초과착취해 이윤을 챙겨 온 인천공항공사야 당연히 정규직 전환에 반대할 테지만, 공사 정규직의 3분의 1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일은 더 많이 한 당사자들이 왜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기사를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나니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건 공사와 공사 정규직 노조였다. 둘 다 초과착취의 주체들이니 당연하다.

검색요원을 직고용하면 파업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게 노조가 할 말은 아니다. 소방관도, 판사도, 경찰도 노조를 만들어 파업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까지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적어도 여기서 말하는 노사에서 ‘노’는 검색요원 당사자여야 한다. 공사 정규직 노조를 검색요원 정규직 전환의 주체로 호명한 조선일보의 말장난이 우습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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