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순천의 한 특성화고를 졸업한 20대 여성. 그는 전북 익산 오리온 공장에 입사해 2년을 넘게 다녔다. 그동안 회사에서 성추행·사내 유언비어·부서이동 같은 괴롭힘에 시달렸다. 죽기 얼마 전에는 상급자에게 업무시간 외에도 불려 다니며 시말서 작성을 강요당했다. 회사에서 받은 괴롭힘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서 힘들어하다가 “그만 괴롭혀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아파트는 좁은 주차공간이 고질적인 문제였다. 경비노동자는 그날도 이중주차를 해결하기 위해 입주민의 차를 옮기던 과정에서 마찰을 빚었다. 그날부터 입주민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코뼈가 내려앉을 정도의 심각한 폭행과 폭언, 해고위협에 지속적인 고통을 받았던 그는 “저 억울해요. 제 결백 밝히세요”라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두 사건은 최근 연이어 발생했다. 비록 성별·나이·직장·지역은 다르지만 죽기 전까지 회사와 가해자에게 당했던 괴롭힘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죽음’으로 괴로움을 멈출 수 있었고, 고인이 당해야 했던 상황이 드러나게 됐다.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과정에서 제보받고 해결해 줘야 할 사업주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7월16일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다. 시행 당시에도 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시행 뒤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보도나 토론회를 통해 실제로 적용 과정의 문제점을 확인했다. 법 적용 확대를 위한 여러 과제가 제기됐다.

첫 번째 문제는 직장내 괴롭힘을 당해서 사업주나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더라도 처벌이 이뤄지거나 문제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내 괴롭힘의 해결 주체가 사업주이고 자율적인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더욱 그런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에 사업주 의지에 따른 한계가 많다.

다음으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는 법 적용이 어렵다. 한국의 사업장 중 30% 이상이 5명 미만 사업장인데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10명 미만 사업장도 직장내 괴롭힘에 관한 취업규칙을 작성해 노동부에 신고할 의무가 없기에 실질적인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은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다는 사업장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 처지에선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피해자나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노조 조직률이 12%도 안 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업주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노동부에 고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업주와 사업주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회사에서, 사업주 가족이 괴롭힘을 행하는 가해자일 때 사업주에게 먼저 신고하도록 한 제도로는 해결방안을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 얼마 전 직장갑질119를 통해 이러한 제보가 많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됐고, 노동부는 제도 보완을 약속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위 사례처럼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과정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적용 과정에서 피해자 요구에 맞게 해결되기까지 많은 한계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부는 시급히 사업장 실태조사를 통해 법 적용의 문제, 과정상 어려움, 보완해야 할 조치, 법·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

더불어 10명 미만 사업장에서 신고된 취업규칙 내용을 검토해 미비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10명 미만 사업장에 실질적으로 법을 적용하기 위한 방안도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5명 미만 사업장의 직장내 괴롭힘 실태를 파악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올해 3월17일과 5월11일 두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은 존재했으나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다. 한시바삐 이들의 죽음에 대한 회사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더불어 이들의 죽음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 사업장 실태 파악과 노동자 참여를 통해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어떻게 길을 찾고, 한계를 보완할지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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