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운 노무사(에이원 노무법인)
▲ 이상운 노무사(에이원 노무법인)

“징계 같은 것 받은 적도 없고, 고정급도 없잖아요.”

최근에 대리한 학원 강사 퇴직금 미지급 진정 사건에서 무혐의처분 이유에 대해 묻자 근로감독관이 밝힌 대답이다.

A씨는 한 국어학원에서 3년반 정도 아이들을 가르친 학원 강사였다. 적극적(?)으로 인사관리를 하는 원장 밑에서 일하다 보니 지휘·명령을 입증할 자료가 너무 많았다.

강사가 수업 전, 수업 중, 수업 후 지켜야 할 매뉴얼이 있었고 수습기간 3개월에 고정적인 휴일을 제외하고 주 5일을 꾸준히 근무하는 체계였다. 매주 1회 있는 회의와 단톡방에서 이뤄지는 상시적인 지휘·명령과 보고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줄여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고정급은 아니었지만 받아 온 급여 수준도 일정했다. 지휘·명령을 입증하는 학원 내 운영프로그램·평가서식에 대해서도 조사 과정에서 원장이 직접 만들었다고 인정해 무난하게 끝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도대체 뭐가 더 필요했을까. 전화기 너머로 들은 대답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노동자로서 근무 태만 등을 이유로 징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말해 너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얘기를 A씨에게 어찌 전해야 하나 싶을 뿐이었다.

근로관계가 양자관계에서 다자관계로 변하고 있듯이, 근로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법부의 근로자성 판단도 기존의 근로자성 판단 징표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 변화에 맞춰서 하고 있다.

특히나 고정급에 관해서는 ‘사용자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악용 가능성’을 이유로 근로자성 판단의 부차적인 요소로 명시하고 있다. “사용자는 도급이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제도로 사용하는 근로자에게 근로시간에 따라 일정액의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47조(도급 근로자) 규정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부터 법에 명시돼 있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의 근로자성 판단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특별사법경찰관 지위에서 형사적 판단을 해야 한다지만, 법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법원보다 뒤처질 이유는 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특히 근로자성 판단에서는 더더욱 노동부 시계는 느리게 흘러간다. 행정구제의 신속성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문구처럼 느껴진 지 오래다.

소송을 제기해 결과가 나오는 시간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근데 그렇게 만나게 되는 결과가 심지어 현실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구태의연한 판단이라면 노동부가 굳이 있어야 할 이유는 뭘까.

상담을 하다 보면 “노동부에 진정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에 가장 많이 붙이게 된다. 그런데 근로자성을 다퉈야 하는 사건에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노동부에 가면 형식과 부수적인 게 중요할 수 있으니 퇴직금의 절반 이상을 변호사 비용으로 쓰더라도 소송을 하시라고 해야 할까? 너무 부지런히 일해서 어려울 것 같으니 징계 한번 받으라고 해야 할까? 노동부의 근로자성 판단, 이제는 진짜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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