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커차 운전기사인 김주석(35·가명)씨는 운전 중 빗길에서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갈비뼈가 골절됐다. 처음에는 산업재해보상 신청을 하지 않았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고, 본인이 산재신청 대상자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회사측은 김씨 부주의로 교통사고가 나 손해를 입었다며 김씨를 상대로 차량 파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산재를 신청하려 했지만 회사 폐업과 송사가 겹쳐 치료비를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이진희(46·가명)씨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이다. 그는 일하다 다친 뒤 공공기관의 민낯을 제대로 봤다고 한다. 산재신청을 하면 해고한다는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산재발생 직후에는 대체인력을 구하기 위해 자비까지 썼다. 이씨는 퇴직한 뒤에야 시민단체 도움을 받아 산재를 신청했다.

업무 중 교통사고, 사용자는 “차량 파손 물어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조는 산재보험 사업 사업시행 목적 중 하나를 “근로자의 업무상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휴업급여와 요양급여를 포함해 산재를 통해 노동자가 지급받는 돈은 생계비와 의료비로 지출된다. 때문에 신속한 승인과 지급은 노동자의 생계를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김주석씨나 이진희씨 사례처럼 노동자들이 산재신청을 하고 산재로 인정받기까지는 현실의 벽이 높다.

31일 노동건강연대가 펴낸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 연구’에는 산재보상 제도 전반에 걸쳐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노동건강연대는 산재신청 경험이 있는 노동자를 심층인터뷰해 재해 발생부터 접수, 접수부터 승인, 승인 이후 3단계로 산재보상 제도를 나눠 어떻게 사건이 처리됐는지를 살폈다.

노동건강연대는 “산재가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의해 노동시장에서 열세에 놓인 이들에게 전가되며 노동자 각자가 경험한 취약성의 궤적이 이런 조건과 마주친 곳에서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이중노동시장 구조와 위험업무 외주화라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산재 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업주는 비협조하는 구조적인 산재 청구 장애물을 넘다 보면 청구 절차가 지연되고 불승인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일용직 목공 노동자 김태현(45·가명)씨는 “산재가 원청에 보고되면 계약을 안 하니 계속 수주하기 위해서는 산재 처리를 하지 않고 공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증언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18년 발간한 ‘산재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16년까지 산재인데도 산재신청을 하지 않아 건강보험에 청구된 금액은 연평균 2천500억원이나 된다. 그만큼 은폐된 산재가 많다는 뜻이다.

“산재보험 장점, 사업주에게 알려야”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 친화적인 산재보상보험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사업주에게도 산재보험은 민사소송과 치료비 일시지급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대비책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재 발생 이후 긴급지원제도와 간병비 부담을 덜어 줄 방안 마련도 제안했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산재신청과 보상이 산재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산재인정과 대상 폭을 넓혀 산재접수가 많아져야 산재가 많이 일어나는 기업도 밝혀지고 궁극적으로 산재 발생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건강연대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난해 실시한 산재노동자 생계비 지원사업과 함께 이번 연구를 병행했다. 생계비 지원사업은 올해에도 이어진다. 다음달 24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상시노동자 10명 미만 제조업 노동자와 5명 미만의 요식업 노동자·사업주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1인당 50만원이 1회 생계비로 지원된다.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laborhealth.or.kr/apply)와 전화(070-4250-9288~9)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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