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지혜 서울청년유니온 위원장

노동법을 왜 공부하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간단하게 대답하기엔 생각이 많아지는 질문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대답은 “일하다가 다치고 죽는 게 싫어서요”였다. “그래?” 정도의 반응. 그리고 얼마간 정적이 흘렀다. 노동을 매개로 발생한 죽음을 끊임없이 접하게 되는 요즘, 그 새벽의 짧은 침묵 속에서 떠올랐던 이름들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몇 년 전, 한 보험회사 지점장이 해촉당한 일이 있었다. 지점 실적평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해촉사유의 이면에는 지점 분할, 소속 설계사들 인사배치를 두고 본사와 갈등이 있었다. 본사에 면담을 요청하러 갔지만, 본부장을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는 회사에서 지점장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설계사로 시작해 한 지점을 이끌어 가기까지 긴 시간 회사가 애정해 마지않는 수익을 안겨 준 그. 어느날 통보받은 해촉의 허망함을, 해촉 과정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당함을, 면담 기회조차 주지 않는 모멸감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해촉, 계약해지는 개인에게 우연히 불어닥친 불행이 아니다. 세상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오늘도 계약해지라는 벽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기형적인 노동조건과 부조리한 일터문화는 누군가를 절망으로 내몰았다. 장시간 과로와 저임금 노동이 난무하는 열악한 방송노동 환경에 문제제기하며 세상을 떠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가 있었다. 장시간 노동과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터넷 교육업체 에스티유니타스 장민순 웹디자이너가 있다. 당시 CJ E&M과 에스티유니타스는 사과했고 재발방지 대책을 냈다. 청년을 위로한다는 드라마가, 수강생 대다수가 청년이고 공무원 합격으로 청년의 꿈을 이뤄 준다는 회사가 청년의 몸과 마음을 갈아서 유지되고 있는 현실은 변했을까. 14년 동안 청주방송에서 사실상 근로자처럼 일하고 무늬만 프리랜서였던 이재학 PD는 처음으로 자신을 비롯한 프리랜서 PD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2020년 2월 세상을 떠났다.

28일은 서울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로 숨진 김군의 4주기였다.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은 2인1조가 원칙이었지만 그는 혼자 일하고 있었다. 구의역 참사 뒤 태안 화력발전소의 어두운 현장에서 홀로 근무하던 청년 김용균이 사망했다. 올해 노동절을 앞두고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산재로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2008년에는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산재로 40명이 사망했다. 비정규 청년노동자가 안전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노동현장에서 홀로 사망하는 사고가 반복되고 화재로 수십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죽으려고 일을 하는 사람은 없는데, 왜 이렇게나 많은 죽음이 노동에서 비롯되는 걸까. 죽음을 각오하고 일해야 하는 사회에서 포스트 코로나19를 운운하고, 청년의 구직을 촉진한다고 하고, 노동을 존중하는 정책을 세운다 하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되묻게 된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 4주기를 앞두고 진행된 ‘유가족이 말하는 산재 사망사고와 기업처벌’ 간담회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 그렇게 스러져 가는 죽음을 막아 보겠다고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법인과 사용자에게 책임을 지도록 해서, 그리고 양형을 늘려서 일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제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고용형태를 이유로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계약해지와 해고라는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절망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그것에 누군가는 책임을 지게 할 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어떠한 변명을 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비극을 겪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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