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자의 죽음은 되풀이되는 걸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왜 우리는 지금도 세계 최고 산업재해 왕국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는 걸까. 한 해 2천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노동자가 죽어 간 그 자리에 왜 또 다른 노동자가 다시 일하다가 죽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안전보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와 함께 ‘왜 노동자 죽음은 되풀이되는가’라는 주제로 집담회를 열었다. 집담회는 지난 18일 오후 서울 동교동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진행됐다.

김미영 매일노동뉴스 기자 사회로, 강한수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고용철 전 삼호중공업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현재순 화섬식품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이 함께했다.

사회 : 노동자의 죽음이 되풀이되고 있다. 오늘 이 자리는 현장노동자의 시선으로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원인과 대책을 짚는 자리다. 자기소개로 시작하자.

고용철 : 2년 전까지 명예산업안전감독관직을 하다가 지금은 금속노조 현대삼호중공업지회 조합원이다. 1990년대 현대가 인수하기 전 한라중공업 시절, 처음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충격이 컸다. 노조위원장이 조합원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파업을 선언했다. 아무 절차도 밟지 않고 모두 일손을 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1천여명이 모였는데 열흘쯤 지나니 11명이 남았다. 그중 6명이 내가 속했던 팀원들이었다. 그렇게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강한수 : 지금은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 위원장도 함께 맡고 있다. 그전까지 부산에서 오랫동안 목수일을 했다. 부산은 전국에서 최고층 아파트가 가장 많이 밀집한 곳이다. 해운대 엘시티호텔 옆 아파트는 88층짜리다. 고층건물 공사현장에서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산재사고가 일어나는 원인을 파헤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지더라. 지난해 1월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을 맡았다.

현재순 : 원래는 금속노조 조합원이었다. 작업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들다가 실패하고 화섬연맹(화섬식품노조)에 공개채용으로 들어갔다. 화섬연맹 사업장은 위험한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산재사고도 많은 편인데 당시 노동안전보건 담당자가 없었다. 화학물질 사고는 발생 건수는 적어도 한 번 나면 대형사고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012년 구미 불산(불화수소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 관련된 제도개선이 주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런 사업을 하는 단체인 일과 건강 기획국장을 겸직하면서 화학물질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이태성 :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기자회견으로 처음 세상에 알렸다. 사실 발전소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정규직이었다. 정부의 에너지 민영화 방침으로 가장 어렵고 힘든, 소위 3D 업무는 전부 외주화됐다. 그 결과로 발전소 산재사고의 97%가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의 죽음 이후 정부가 많은 약속을 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그 뒤에 어떤 카르텔이 존재하는지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도 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죽고 있다

사회 : 현장에서 안전보건 법규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나.

이태성 : 김용균 죽음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다. 발전회사들도 안전대책을 쏟아 냈다. 하지만 최근 한 발전소에서 노동자가 또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0일 충남 서천에 건설 중인 신서천화력발전소에서다. 건설현장에서 전기설비를 차단하는 시설을 점검하다가 변압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노동자 네 명이 화상을 입었고 그중 한 명이 일주일쯤 지나 사망했다. 같은달 20일에도 한 화력발전소 기계점검 공사현장 10미터 높이에서 일하다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용직 청년노동자였는데 크게 다쳤다. 하반신을 못 움직일 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에는 노동자 한 명이 검은색 석탄과 가스로 가득 찬 공간에 파묻힌 채 간신히 얼굴만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이태성 : 이 사진은 얼마 전 발전소 옥내 저탄장(석탄을 쌓아 두는 곳)을 찍은 것이다. 석탄은 자연발화할 정도로 가스가 많이 발생한다. 검은색으로 보이는 이게 전부 가스다. 일산화탄소 중독 우려가 있어서 산소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런데 여기 작업자 얼굴을 보면 방진마스크 한 장만 쓰고 있다. 이렇게 유해물질이 발생하는 밀폐된 공간의 작업은 원청의 안전담당자가 있어야 한다. 가스 농도가 일정 수치 이상 오르면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원청은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해 놓고 하청업체에 책임을 묻는다. 이렇게 위험한 현장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이 원청이 할 일인데 말이다. 김용균법의 핵심은 원청의 책임 강화다. 그런데 아직도 현장은 원청이 안전 책임을 지지 않고 하청노동자에 업무를 지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퇴출하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순 : 지난 3월 서산 대산공단에서 롯데케미칼 공장 폭발사고로 50여명이 다쳤다. 지난해는 같은 공단의 한화토탈에서 사고가 났다. SH에너지화학 군산공장에서도 3월 폭발사고로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부분 설비 안전점검 문제다. 회사 안전관리팀장이나 관리자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화학물질 사고의 40% 이상이 설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다. 설비를 제때 교체하거나 점검하지 않는 건 다 기업들이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설비관리 주체가 사업주라서 강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화섬식품노조가 노후설비에 대한 안전관리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교량·댐 같은 공공시설물의 경우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이 있듯 산업단지 시설도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업장 노후 시설물 관리감독 권한을 갖되 작은 사업장에는 비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강한수 : 최근 현장은 건설기계 장비가 대형화하고 의존도도 높아져 장비로 인한 사고가 많은 편이다. 폭발·추락·질식 같은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안전법규를 잘 준수하는지 판단하는 기본적인 척도는 개인보호구 지급 여부다. 건설현장은 지금도 안전화나 안전모 같은 개인보호구를 잘 지급하지 않는다. 현장에 새로 나온 사람들에게 “며칠 일하다가 다른 데 가면 어떻게 하냐”며 “안전화는 보름 이상 일하면 주겠다”고 한다. 안전교육도 잘 안 된다. 사진 찍고 교육확인서만 대충 받고 시간도 안 채우고 끝낸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아웃소싱도 심각하다. 불법 하도급이 중층적으로 이뤄지면서 중간에 공사비가 다 빠져나간다. 결국 10명이 할 일을 5명이 하게 된다. 그래서 공사현장에는 여러 협력업체가 동시에 일하는 경우가 많다. 옆에서 일하는 다른 협력업체 사람들은 서로가 하는 작업의 위험성을 전혀 모른다. 시공사인 원청이 동시에 하는 작업의 위험성을 교육하고, 작업 순서를 정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사고가 발생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여전히 안 지켜지는 곳이 건설현장이다.

고용철 : 처음 노조에서 일할 때 “조선소에서 안전보건 관련 법을 다 지키면 조선소 문 닫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은 그래도 노동부에서 점검 나오고 사고가 많이 나니 법은 지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사업장이 그런 것은 아니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일할 때 어떤 현장을 방문했다. 아연도금 물이 펄펄 끓고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안전화도 안 신고 샌들을 신고 일하더라.

건설업 산재 사망사고 줄었다고?
사고사망만인율은 늘어 ‘산재 요요’ 현상 걱정


사회 :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문재인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노동안전보건 제도와 정책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나.

강한수 : 고용노동부에서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 통계를 발표했는데 건설업의 경우 2018년 대비 사고사망자가 57명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 노동부는 지난해 건설업 산재예방 사업성과가 나오는 것이라며 올해 더 많은 숫자를 줄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노동부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니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상시근로자 1만명당 사고사망자 비율)은 1.65명에서 1.72명으로 오히려 0.07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건설경기 침체로 건설노동자가 290만명에서 240만명으로 줄었다. 건설노동자가 50만명 줄면서 사고사망자가 57명 줄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타워크레인도 마찬가지다. 사망사고가 속출하자 정부가 집중적인 감독을 해서 2018년 사망자가 0명이었다. 그런데 정부 감독이 느슨해지면서 지난해 1월부터 바로 타워크레인 사고가 터졌다. 근로감독관 800명을 투입하는 패트롤점검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일시적인 조치다. 그런 방식으로 당장 산재사고를 줄인다 해도 언젠가는 산재 요요 현상이 온다. 정부가 기존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

이태성 : 안전 수칙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은 분명 있다. 하지만 여전히 원청의 면피수단으로 활용되는 지점이 너무 많다. A발전 안전신고센터를 예로 들어 보겠다. A발전 직원이나 협력사 직원이 회원으로 가입하면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신고자가 신고를 하면 발전소 설비를 세워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럼 전기 생산을 못해 (이의제기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신고한 노동자가 입을 불이익도 걱정이다. 실제로 잘 운영되지도 않는다. 신고해서 조치를 완료한 건수를 확인할 수 있고 홈페이지에 조치 결과가 나와 있는데 무엇을 해결한 건지 전혀 공유가 안 된다.

원청은 여전히 “전기를 생산하기만 하면 된다”는 관점에서 안전 문제를 바라본다. 컨베이어벨트를 예로 들어 보자. 김용균 노동자도 2인1조로 작업하지 않고 혼자 일하다가 죽었다.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다 이상 발생시 작동을 멈추게 하는 안전설비를 풀코드 스위치(비상정지장치)라 한다. 발전사가 김용균 사고 이후 새로운 안전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했다. 그게 센서다. 운전 중 컨베이어벨트에 노동자가 접근하면 자동 경고방송이 나온다. 안전장치라기보다는 알람장치다. 사고 위험이 있고 근접할 경우 센서 역할은 안내하는 방송이 아니라 컨베이어벨트를 멈추는 것이 돼야 한다.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통제하고 중단하는 방법은 쓰지 않는다. 지금의 안전장치가 대외적인 홍보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김용균 사고 이후에 만들어져 원·하청, 협력사가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의 심의 안건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 하청노동자 참여는 일부 보장됐지만 안전경영위원회에서 현장노동자가 무엇을 논의하고 결정했는지 알 수도 없다.

작업환경측정 제도도 마찬가지다.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하청노동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사회 : 작업환경측정결과를 노동자에게 알리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던데.

이태성 : 문서에 워터마크(복제 방지용 기술)를 찍어 되레 유출을 막는다. 우리가 어렵게 입수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다. 여기 보면 작업현장에서 1급 발암물질이 기준치의 4.2~4.5배나 높은 것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 작업하는 하청노동자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

현재순 : 화학물질관리 관련 법률이 강화됐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일본과의 외교문제가 있을 때도 재계는 “화학물질관리 규제가 너무 강하다”고 주장한다. 2015년부터 법이 시행됐는데 현장 적용이 굉장히 늦어졌다. 미국·유럽보다 규제 강도가 세지 않은데 재계는 틈만 나면 규제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이태성 : 노동부가 발전소 같은 경우 불시점검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근본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과태료 부과 수준에서 끝난다. 발전소는 2018년 김용균 노동자 죽음 이후 CCTV를 수천 개 설치하고 감시한다. 물론 안전 통제 목적이라고 하지만 현장노동자에게는 위험요소를 외부로 알리는 것을 막도록 기능한다.

다단계 하도급 타고 반복되는 중대재해
“기업 이윤, 노동자 생명보다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


사회 : 중대재해의 근본원인은 놓아두고 단기처방만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진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강한수 : 건설현장은 다단계 하도급이 가장 큰 문제다. 원청 관리자는 공사를 얼마나 빨리 진행하느냐, 공사기간(공기)을 맞출 수 있느냐만 생각한다. 안전관리자는 3천명이 일하는 건설현장에도 몇 명 안 되고, (현장을 통제할) 힘이 없다. 하도급 때문에 작업지시에 관한 책임도 명확하지 않다. 현장 협력업체 노동자끼리는 서로가 하는 작업을 잘 모르지만 시간에 쫓겨 빨리 작업하다 보니 작업지시도 명확히 받지 못한다. 휴일에 작업관리자가 나타나지 않아 노동자끼리 작업하다가 사고가 나기도 한다. 또 건설업계가 해야 할 말이지만 최저가 낙찰제, 입찰·낙찰 구조도 산재사고와 임금체불 문제를 발생하게 만든다.

고용철 : 안전에 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노동자가 실수하든, 기계가 오작동하든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안 나야 안전한 건데 현장의 안전관리는 사람의 행동만 통제하려 한다. 그냥 조심하라는 거다. 예전에 안전보건공단 슬로건이 ‘조심조심 코리아’였다. 사고 안 나게 조심하라는 거다. 그런데 현장에서 사고가 나는 걸 보면 불완전 상태와 불완전 행동이 7 대 3 정도라고 한다. 누구는 3 대 7이라고도 하고. 그 비율이 중요한 게 아니다. 기계결함 같은 불완전한 상태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다. 그런데 작업자 실수 같은 불완전한 행동은 추상적이라 그렇지 못하다.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배 안을 청소하는 여성노동자가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으로 닫히는 문에 끼여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래서 스위치를 누르는 손을 떼면 자동문이 멈추도록 바꿨다. 그랬더니 스위치에 철사를 꽂아 놓더라. 스위치를 잡고 가면 손이 아프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그런데 그걸 순간적으로 잘못 빼면 또 문에 끼여 사망하는 거다. 그런 사고가 두 건 발생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철사를 못 꽂도록 하는 스위치를 또 만들었다.

이태성 : 발전소 공정은 인력이 세분화돼 있다. 협력업체가 서너 개씩 들어온다. A업체 사람이 잘못하면 B업체 사람이 죽는다. 같은 하청업체 사람들끼리 사고가 연속적으로 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다. 원청은 “내가 고용 안 했으니 내 책임이 아니다”고 한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권고 내용도 “불안전한 요소를 만드는 시스템을 통제할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현재순 : 흔히 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하지 않나. 큰 재해,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으로 나타나 정삼각형인데, 우리나라는 역삼각형으로 사망사고가 더 많은 구조다. 일단 정부든, 사업주든 사고의 첫 번째 원인을 사람의 실수, 즉 작업자 부주의로 본다. 시스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안 한다. 선진국의 안전보건 개념 전제는 ‘사람은 신이 아니므로 실수할 수 있으니 실수해도 사고와 피해가 안 나게 하자’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가 만드는 산업재해조사표에는 사고 원인의 70%가 ‘작업자 부주의’ 한 줄로 기재돼 있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사측에서 징계위원회를 열기도 한다. 노조도 “우리가 조사해 봤더니 조합원 실수보다 시스템 잘못이 더 크다”고 말해야 하는데, 조직률이 10%밖에 안 된다는 한계도 있다. 의지와 여력이 있는 노조가 사고원인 조사에 직접 나서야 한다.

재해조사, 노동자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나?
“노동자가 사고조사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 만들어야”


사회 : 현장의 재해조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이태성 : 고 김용균 사망사고 당시 그렇게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실제로 노조나 유족은 재해조사보고서나 사고조사 작성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가장 공정을 잘 알고 이 일에 대해 잘 아는 노조가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노동부에 물으면 “안 된다”고 답한다. 노조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사고원인은 규명되지 않는다.

고용철 : 노동자 중심 사고조사가 아니라 사업주 중심의 사고조사가 문제다. 기계결함, 안전장치 파손을 묻는 게 아니라 노동자에게 “어제 술 많이 먹었냐”고만 묻는다. 실제로 그렇다. 현대중공업에서 3미터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노동자의 사고조사보고서에는 “이 사람이 최근에 퇴사 의사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 도대체 그게 사고 원인과 무슨 관련이 있나. 아까 컨베이어벨트 센서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현장에서 산업용 로봇팔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센서가 없었을까? 아니, 있었다. 그런데 그 센서는 로봇이 부서질까 봐 만들어진 장치였다. 로봇이 오작동하면 작업을 멈추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장치가 없어서 사람이 죽는다. 사람의 실수나 불완전 행동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게 먼저다.

현재순 : 화섬식품노조는 단위사업장에 “사고가 나면 무조건 노사공동조사반을 꾸려라”고 말한다. 아니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논의하고 노사가 함께 조사하도록 한다. 재해 원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서 사고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중대재해 막으려면 노동자에게 작업거부권 있어야

이태성 : 위험작업을 시키면 노동자가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불완전한 요소들이 있는 상황에서도 원청이 작업을 지시하고 하청은 비용 때문에 작업을 강행할 때가 많다. 노동자들이 위험작업을 거부해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특별조사위원회 권고안의 핵심이기도 하다. 바로 작업거부권이다.

고용철 : 노조도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조선소는 오토바이를 못 들어오게 한다. 실제로 작업현장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많이 난다. 조선소가 워낙 넓으니 조합원들도 불만이 많다. 현대중공업으로 회사가 매각된 뒤 현대중공업에서 온 관리자 일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우리가 몰래 오토바이 바퀴를 펑크 내고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리곤 했다. 조합원 중에 자전거에 모터를 달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이걸 허용하면 더 빠른 장치가 나타날 것 같아서 안 된다고 했다.

현재순 : 그러고 보니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오토바이를 못 봤다.

고용철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하지만, 그것으로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 기업은 아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비한 보험을 하나 더 만들 것이다. 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처럼 말이다.

2002년에 싱가포르 지하철 공사현장을 산업안전공단(현 안전보건공단)·노동부랑 함께 갔다. 작업이 80% 완료됐다고 해서 “사망사고나 다치는 사고가 많이 있었겠다” 싶었다. 한 건도 없다기에, 모두가 “이건 산재은폐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거기 소장이 오히려 우리를 이상하게 보더라. “이 나라는 산재은폐가 안 된다”고. 산재 접수를 병원에서 의사가 바로 한다고 했다. 한국 생활을 겪어 본 현장에 있던 사람이 “여기는 원칙을 그대로 지킨다”며 “문화의 차이”라는 얘기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아래부터 안전에 관한 인식을 심어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 아이가 노동자가 되든, 사업주가 되든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자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안전인식 제고와 안전관리감독 강화 모두 필요”


사회 : 마지막으로 중대재해 재발을 막으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 의견을 말해 달라.

강한수 : 몇 가지 사례로 말하겠다. 한 시공사 현장소장에 관한 기사를 본 적 있다. 보통은 하루 만에 만드는 비계를 일주일 동안 만들었다고 하더라. 그 사람이 “처음 작업할 때 제대로 해야 노동자도 편하고 안전하게, 결국 빨리 작업한다”고 답하더라. 원청은 공사기간을 무척 신경 쓴다. 일주일이라는 공사기한을 우선하기보다 안전한 현장이 공사기간도 단축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미시시피강 다리공사 중 발생한 산재사고가 있었다. 일하던 노동자 한 명이 강 아래로 떨어졌는데, 법원에서 회사에 200억원 벌금을 부과했다. 법원은 회사가 강 아래로 떨어지는 노동자를 구조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구명보트가 없었던 건 과실치사가 아니라 ‘고의적 살인행위’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트에 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안전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 사고 원인을 어떤 개인의 행위에서만 찾기보다 ‘아차’사고가 대형사고로 번지지 않도록 만드는 모든 예방조치를 안전조치로 확장해야 한다. 그게 기업과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언론도 바뀌어야 한다.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참사 기사를 보면 담배꽁초를 언급한 보도가 있다. 화재 현장에 담배꽁초가 있었다고 보도하는 것이다. 그럼 그 기사를 읽는 독자는 무엇을 떠올리겠나. 노동자 개인을 폄훼해 ‘죽을 짓 했다’고 하는 행위 중심 보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순 : 시스템이나 제도에 의한 사고라는 것을 현장 곳곳에서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조에서 아차사고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게 시작이라고 본다. 최대한 많은 사례를 만들고 울산의 경우 노조가 사고조사보고서를 책자 형태로 만들어 전파하기도 한다. 노동자가 사고조사에 참여하고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현장 곳곳에서 밝힐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 : 중대재해 재발을 막으려면 작은 사고부터 철저하게 조사하고 규명하자는 취지가 좋다.

이태성 : 정부가 지금까지 수많은 보고서를 냈다. 삼성 크레인 전복사고나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 노동자 사고는 특별조사위원회도 만들고 보고서도 냈다. 하지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기업은 이윤논리를, 노조는 조직화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댔다. 정부는 안일한 대처를 한다. 노동자 목숨은 여전히 깃털처럼 가볍다. 이번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참사도 굉장히 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 갔다.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526일째다. 아직도 김용균의 동료, 발전소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12일 많은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업을 우선하기 전에 누군가의 가족일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고용철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당연히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고조사나 안전조치, 사고예방에 노조가 있든 없든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 감독 강화도 강조하고 싶다. 정부는 항상 “인원이 없고, 근로감독관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부족하다(2018년 기준 근로감독관 한 명이 담당하는 사업장은 1천488개, 노동자는 1만3천531명이다). 근로감독관 한 명이 1년 내 모든 사업장을 다 가 보지도 못한다. 실업률도 높으니까 근로감독관도 많이 뽑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안전보건에 관한 혁명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안전한 환경이 무엇인지 안전이 무엇인지에 관해 제대로 인식하고 노조도 안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얼마 전 금속노조 신입간부에게 안전교육을 하러 갔더니, 조합원이 “안전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왔다”고 하더라. 내가 손뼉을 쳐 줬다. 우리 노동자 모두가 안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집담회는 ‘노동안전 패러다임 2020, 바꿔야 줄인다’ 기획의 일환입니다. 매일노동뉴스는 안전보건공단과 산재 줄이기 캠페인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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