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녕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약 2주 전 근로복지공단 서울북부지사에 다녀왔다. 서울의료원 고(故) 서지윤 간호사의 산업재해신청을 위해서였다. 산재신청이란 본디 누군가 죽거나 다쳤을 때 하는 것이다 보니 신청서를 제출하는 마음이 무겁지 않을 때가 없다. 하지만 그날의 기분은 유달리 착잡했다. 서류접수를 마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너무나도 젊고 유능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결정적인 원인이 직장내 괴롭힘이었다는 점이다. 망인은 △간호사 본인이 희망하는 부서로 이동시켜 왔던 통상의 관행과 달리 관리자 3명의 집중적인 면담 끝에 원하지 않은 부서로 배치됐다. 5년 이상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업무만을 했는데 느닷없이 행정업무를 떠맡았다. 정작 행정업무를 수행하러 가서는 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무기기도 제공받지 못했고, 행정업무를 빙자한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게다가 행정업무 수행 중간에 숙련도가 매우 높은 간호사들만이 배치됐던 병동에 단독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사망 직전까지 망인의 부서이동 내역은 한마디 말로 압축되는 듯하다. ‘네가 어디까지 버티나 한번 보자.’

망인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친구와 동료, 함께 병원에 있었던 환자들은 하나같이 망인이 간호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밝고 친절한 사람이었으며 싹싹했다고 말했다.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간호학사 특별과정(RN-BSN)을 시작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정도로 자기계발도 열심이었다. 괴롭힘을 당해도 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왜 하필 망인이 직장내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는지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직장내 괴롭힘의 본질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실은 가해자를 불러다 앉혀 놓고 물어봐야지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의료원은 아직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도, 처벌도 하지 않았다. 망인이 숨진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기본적인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에 속 쓰릴 뿐이다.

두 번째는 망인이 직장내 괴롭힘으로 무너져 내렸던 배경에는 만성적인 과로가 있었다는 점이다. 망인을 비롯한 서울의료원 간호사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높은 직무요구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업무 긴장 △환자·보호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감정노동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수면장애를 유발하는 불규칙한 3교대 근무 △근골격계 부담작업 △업무강도 대비 턱없이 부족한 보상에 시달렸다. 5년간 만성 과로에 시달린 망인은 어느새 기력이 소진된 상태가 돼 버렸고, 이후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면서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하게 무너졌다. 만성과로라는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망인이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독한 바이러스를 만났던 셈이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소진된 상태에서 과연 환자에 대한 적절한 간호가 이뤄질 수 있는 걸까.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병원은 늘 ‘환자 중심’을 외치면서 환자를 돌보는 이들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환자를 돌보는 노동자가 파업을 해?’ 또는 ‘병원 내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지 마라’며 의료진의 노동조건 개선 활동을 비난하곤 한다. 그런 병원에 망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만성적인 과로가 성실하고 착실한 사람을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지.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코로나19로 한국 간호사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TV에서 “덕분에”라는 감사 인사와 찬사가 쏟아진다. 마땅한 일이지만 공치사로 끝나서도 안 될 일이다. 코로나19를 통해 간호사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그 소중한 간호사들이 더 즐겁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망인에 대한 산재가 최대한 신속하게 인정되라고 기도부터 할 예정이다. 망인 사건을 통해 간호사 집단 내부의 직장내 괴롭힘과 만성 과로가 명명백백하게 인정돼 우리 사회에 경종이 울려 퍼지길 바란다면 너무 심보가 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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