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5일 밤 10시였다. 나는 흘러내렸다. 민주화운동으로 기념되는 광주항쟁을 며칠 앞두고 KBS 특집프로그램 ‘광주비디오’를 보다가 TV 앞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벌써 5·18 40주년인가. 1980년 광주를 학살하고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불심검문과 소지품 검사가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1986년인가. 그 무렵 나는 학생회관에서 네댓 번은 봤다. 바로 그 광주비디오가 어떻게 제작돼 배포됐는지를 살피는 TV프로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나는 눈물범벅을 하고서 봤던가. 아무리 기억해 보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디오를 보고서 스크럼을 짜고서 오월가를 부르며 교문 밖을 향해 달려 나가다 전투경찰의 최루탄 세례에 눈물을 쏟아 냈던 기억만 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뿐 너의 젖가슴 (중략)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니”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우리는 이 오월가로 광주의 학살을 알고서 목이 찢어져라 노래했고, 하얗게 터지는 최루탄과 매캐한 지랄탄 아래서만 매운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2.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MBC 인터뷰에서 발포 명령자 규명을 포함한 진상규명 의지를 밝히면서 “개헌이 논의된다면 헌법 전문에 5·18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한 그런 어떤 공작의 실상들까지 다 규명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 ‘집단 발포’ 등 진실을 제대로 규명해야 화해와 통합·용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을 기념한 이후에도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이 여전하고, 특히 학살자가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며 학살을 부인하고 폭동이라고 태연히 명예훼손하고 있는 오늘, 1987년 5월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주동이 돼 광주비디오 상영회를 열었던 그가 5·18 진상규명 의지를 밝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특별하다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출범해 그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5·18을 헌법 전문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헌법 개정이 된다면 특별한 일이다. 3·1운동과 4·19혁명에 이어 5·18을 전문에 명시하게 되면 권력의 폭압에 맞선 항쟁에 대한 폄훼와 왜곡은 대한민국 헌법 앞에서 더는 태연할 수 없고, 5·18에 대한 명예훼손 내지 모욕행위는 대한민국에 대한 명예훼손 내지 모욕행위로 될 것이다.

3. 이렇게 오늘 광주비디오에 눈물 흘리고, 대통령의 인터뷰를 읽고 있으니, 갑자기 나는 한없이 가볍다. 그날이 오면 가슴에 붉은 피가 솟던 오월은 어디로 가버렸나. ‘대머리’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 역사는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고 “쪽바리야 양키놈”하며 당당히 노래하던 붉은 피가 솟던 우리 가슴은 어디로 사라지고, 30여년 전의 시절을 회상하면서 기껏해야 대통령의 인터뷰만 살피고 있는 것인가. 그야말로 순수의 시대였다. 진상규명만 외치지 않았다. 광주학살 전두환을 처벌하라고 외쳤다. 체육관 선출의 정치권력을 국민의 직접선출로 바꾸겠다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그 근본까지 파고 들어가 낡은 세상에 질문을 던졌다. 우리의 심장은 불온할수록 거세게 날뛰었던 날이었다. 껍데기 정치에서 이 세상의 뿌리경제까지 철저히 의심하고 전복하고자 우리의 머리는 통제불능으로 미쳐 있었다. 1948년 이후 한국사를 뛰어넘어 근현대사로 뛰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혁명과 전쟁의 세계사를 종횡했다. 그리고 학교의 담장을 넘어 현장으로 공장으로 의식적으로 투신했다. 순식간에 민주화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타올랐다. 우리의 80년대는 5·18로 타오르기 시작해서 온 세상을 붉게 태울 기세로 솟구쳐 나갔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이 세상을 전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답하는 철학·사회과학을 찾아서 헤맸고 학습했다. 노동자 민중을 위해서만, 오직 당파적인 것만이 과학이고 진리였다. 당시 광주의 5·18도 점점 더 붉어졌다. 시민의 민주화운동에서 점점 민중의 무장항쟁으로, 그 한계와 과제가 무엇인지를 찾아 배웠다. 그렇게 거침없이 학습하고 강철같이 실천하고자 했으니 오늘이 한 없이 가벼울 수밖에. 40주년인 오늘 그저 낮은 수준의 경제적 이해를 위한 활동이나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80년대 우리의 머리로 되돌아가 오늘의 모습을 본다면 가볍다는 말이 오히려 과분한 평가로 여겨진다. 과학의 땅도, 진리의 하늘도 무너졌다. 그토록 기세 높던 학습서는 이제는 낡은 이론서로 헌책방 서가에 꽂혀서 아무도 찾지 않는다.

4.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5·18을 떠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광주의 5·18을 새기며 전개된 1980년대 운동으로 살아난 민주노조운동, 그 거대했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에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 해마다 5·18이 되면, 민주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은 광주 금남로와 망월동으로 달려가 5·18을 기념해 왔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5·18을 어떻게 자신의 역사로 기억하고자 하는 것일까.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부산에서 1987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문재인 변호사는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진상규명을 말하고 헌법 전문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5·18에 빚지고 있는 이 나라 노동운동은 대통령의 말을 받아서 그걸 자신의 입으로 되풀이하고 마는 것일까. 그래서 찾아 봤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전두환 일당과 미국의 학살범죄에 대한 모든 진실을 낱낱이 규명해야 할 것이다. 정치·사회에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대통령 기념사와 같이 정부는 차별과 불평등 없는 사회를 바라는 민심을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다.” 18일, 민주노총은 이렇게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학살범죄를 더한 것 말고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다른 게 없다. 그리고 성명서는 “민주노총은 5·18 민중항쟁이 염원한 대동세상을 실현하는 그날까지 모든 민중들,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끝까지 함께 싸워 나갈 것”이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대동세상, 민중들, 사회 가장 낮은 곳…. 무언가 뜨거웠던 80년대의 것을 떠올리는 듯한 언어인데,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80년대 광주비디오 상영을 주도했던 문 대통령이 5·18 40주년에 바치는 말에 이 나라 노동운동은 오늘 구체적으로 더 보탠 것이 무엇이 있다고 말한 것이 없다.

5. 5·18에서 노동운동을 찾기는 어렵다. 당시 광주에서 1970년부터 전개해 왔던 야학운동을 통해 대학생들이 노동자를 교육했고 이들 중 일부가 적극 참여했다. 시민군 중에 노동자가 많이 포함돼 있다고 해도, 5·18에서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요구를 내걸고 그걸 쟁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5·18 민중항쟁의 광주에서 대동세상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도 그 대동세상에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어떻게 보장됐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민주노총이 말한 “5·18 민중항쟁이 염원한 대동세상”이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 5·18은 아직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전두환의 학살에 맞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무장항쟁인 것이고, “모여서 함께 나가자”며 산 자와 동지들을 불렀던 것은 그야말로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산 자인 우리는 오늘 이 나라에서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한 “정치·사회에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을 되풀이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걸 넘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찾고, 말하고, 외쳐 나아가는 길. 그것이 40주년인 5·18을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진정으로 기념하는 것일 것이다. 이상에 대해 TV 특집프로그램 ‘광주비디오’에 할 일 없이 눈물만 떨군 이의 넋두리로는 거창하다고 비난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5·18의 날에 뜨거웠던 청춘의 꿈을 떠올리고 보니 그 비난 정도는 감수할 용기가 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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