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80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40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 발씩 죽음을 박아 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됐던 겁니다.”(소설 <소년이 온다>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 우리는 마흔 번째 ‘오월’을 맞이했다. 4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광주항쟁은 국가기념일이 됐고, 유력 정치인들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를 찾는다.

현직 대통령은 눈시울을 붉히며 “광주가 피 흘릴 때 함께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주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과를 해야 하고 처벌을 받아야 할 광주 학살의 수괴가 자유롭게 현실을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 학살의 주범 전두환은 잔당들과 함께 쿠데타를 기념하며 와인을 곁들인 샥스핀을 먹고, 골프채를 들고 유유히 골프장을 누비고 있다.

이자는 회고록을 통해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수괴가 이러하니 그의 후예들은 여전히 “5·18은 폭동, 다시 뒤집어야 한다”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에 의해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 “5·18 문제에 대해선 우파가 밀려선 안 된다”는 망언을 끊임없이 쏟아 내고 있다.

언론의 전두환 호칭도 문제다. 보수언론은 여전히 그를 “전 대통령”으로 부르고 있고, 나머지 언론들은 “전두환씨”와 “전 대통령”을 혼용하고 있다.

전두환을 둘러싼 논쟁은 그 자체로 세계를 웃길 코미디다. 수천명의 시민을 죽이고 다치게 한 학살자의 사후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논란’으로 다루는 나라가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고작 2년 수감 뒤 1997년 감옥에서 나온 학살자의 경호를 위해 국민 세금이 100억원 넘게 사용됐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세금은 그를 보호하는 데 쓰이고 있다.

40년이 지나도 광주 학살의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 학살자의 후예들이 여전히 진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부끄럽기 짝이 없다.

“도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젊은 언니 오빠들은 잡아서 때린다는 말을 듣고 공수부대 아저씨들이 잔인한 것 같았다. (중략) 하루빨리 이 무서움이 없어져야겠다.”(1980년 광주 동산국민학교 6학년 김현경양의 일기 중)

“이 사태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사태를 이야기할 수 없다. 계엄군(공수부대)의 잔악성을 보았는가? 쓰러져 가는 많은 시민들을 보았는가?”(1980년 광주여고 3학년 주소연양의 일기 중)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관에는 40년 전 오늘, 국민학생(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소녀가 느낀 공포와 분노가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50대를 훌쩍 넘었을 1980년의 아이들이 2020년의 아이들에게 광주를 이야기해 줄 때 “그런데 전두환은요?”라는 질문에 흔쾌히 답을 할 수 있어야 역사는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추모만 있고, 처벌이 빠진 역사는 그 자체로 ‘직무유기’다. 그래서, 광주항쟁 마흔 번째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다시 크게 말해야 한다.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을 처벌하라!”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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