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한국형 뉴딜’이 지난주 여러 신문을 장식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 ‘한국형 뉴딜 규제 풀고 토목사업도 한다’는 1면 머리기사로 이 소식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한국형 뉴딜’을 “보수정부의 적폐로 비판해 왔던 규제완화와 SOC(사회간접자본)를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곧이어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이런 정책 선회를 “(선거) 압승으로 행정권과 입법권을 모두 장악한 진보 정부가 우파 정책으로 확장해 진보 다수화와 장기집권의 기반을 쌓기 위한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조선일보는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무엇을 내놓아도 정쟁으로 쉽게 치환하는 놀라운 재주를 지녔다.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이 지난 3년 동안 쏟아 낸 1만여건의 ‘기승전 최저임금’ 기사도 따져 보면 집권세력을 흔들기 위한 불쏘시개였다. 조선일보는 현 정부가 맨 처음 내건 적폐청산을 시작으로 경제·사회·문화 등 정책 발표 때마다 정쟁으로 승화시켰다. 근거도 별로 없다. 늘 ‘관계자’라는 익명 뒤로 숨으면 그만이었다. 정부가 과연 적폐청산 의지가 있었는지는 별개 문제다.

조선일보는 이번 기사에선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와 ‘정치권’을 동원했다. 기사에 등장한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우클릭이란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고 했고, 익명의 정치권은 “한국판 뉴딜이 미국 민주당 정부가 뉴딜을 계기로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한 ‘뉴딜 동맹’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적어도 언론이라면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았으면 그 내용부터 분석하는 게 맞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및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10대 산업 분야 규제혁신 방안’의 맨 앞에 개인정보 활용 활성화를 내걸었다.

경향신문은 6일 아침신문에 ‘코로나 핑계로 … 정부, 개인정보 활용 빗장 풀기’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정부 발표를 짚었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에서 “(정부가) 해묵은 규제완화책을 한국형 뉴딜로 포장만 바꿨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응과 규제완화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는 시민사회 목소리도 담았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40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하겠다고도 했다. 정부는 지원 대상을 국민경제·고용안정·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7개 업종이라고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부실했던 기업인지 아닌지 가려 낼 재간은 없다.

코로나19 피해는 가장 낮은 곳에 집중되는데 정부 정책엔 재벌기업들 소원수리가 하나둘 덧칠되고 있다. 언론의 침묵도 한심하다. ‘긴급’이란 말이 무색해진 긴급재난지원금을 70%까지 줄지, 100% 다 줄지 여야가 공방하고 언론이 중계보도했지만 허술한 ‘40조원 기금’은 언론에서 논쟁거리도 아니다.

이 와중에 연합뉴스는 6일 ‘한경연, 사내하도급 불법 판결 늘어 기업부담 가중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주요 기업의 사내하도급 판결을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연합뉴스는 이 기사에서 “주요 판결 5건을 분석한 결과 과거 제조업 분야에 한해 불법 판결을 내던 법원이 최근 간접공정·사외하청·비제조업 등의 분야로도 불법 판결을 확대하고 있다”며 “독일·일본·영국·미국 등처럼 사실상 모든 업무에 파견근로를 허용해야 한다”는 한경연 입장을 대변했다.

연합뉴스 기사가 말하는 5개 판결은 대부분 자기 직원도 아닌 하청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원청 기업에 대한 것이다. 지시하고 싶으면 원청이 직접채용하면 된다. 이렇듯 법은 상식이다. 법을 어기고도 떼쓰는 재벌 뒷배 봐주는 게 언론의 역할은 아니다.

KBS도 11일 밤 특별기획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 길을 묻다’를 방영하면서 예의 그 한경연 보고서를 장황하게 인용했다.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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