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1. 2020년 5월은 불안하다. 해마다 그 첫 날을 노동절로 대대적으로 기념해야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2020년 코로나19가 덮친 세상은 쑥대밭이 돼 버렸다. 노동자들의 대규모 대회와 행진으로 떠들썩했을 도시의 광장과 거리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한산하기만 했다. 코로나19의 공포가 노동자의 기념일을 불안하게 만들어 버렸다. 134년 전인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는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8시간 노동’이라는 그날의 외침은 이후 이 세상 노동운동의 주된 요구가 됐고, 전 세계 노동자들은 투쟁해 왔다. 그날을 기념하는 노동절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열렸다. 노동자 권력을 칭하는 나라에서는 국가행사가 되기도 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나라들로 보자면, 그동안 위와 같이 노동절의 유래가 됐던 노동자투쟁을 전개했던 미국에서 오히려 이날을 소홀히 기념해 왔다. 그런 미국에서 오늘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 나라 중 최대의 코로나19 피해국가가 됐다. 최고가를 경신해 온 주가와 함께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던 미국의 실업률이 코로나19로 순식간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연방준비위원회의 무제한 양적 완화도, 연방정부의 수조원 재정지원도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 주지 못했다. 그저 기업이 망하지 않게, 노동자가 생존하도록 하는데 그치고 있다. 미국에서 3월5일부터 이달 2일까지 7주 동안 신규 실업수당 청구도 3천350만건에 달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쌓아온 2천280만 개의 일자리가 단번에 사라졌다. 실업률은 3월 4.4%에서 4월 14.7%로 치솟았는데 이는 미국에서 월간 실업률 집계를 시작한 1948년 이후 최고치였던 1982년 10.8%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이 불안한 5월 중에는 그 실업률이 25%에 이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는데 1933년 세계 경제 대공황 당시 미국의 실업률이 24.9%였으니, 그야말로 사상 최악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134년이 지난, 이 사상 최악인 날에 많은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와 봉쇄 해제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는 뉴스가 불안하게 날아들고 있다. 이렇게 코로나19가 덮친 미국까지 끄적거리고 있자니 ‘그 정도는 아니니 이 대한민국에 안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난 1일 TV뉴스를 보다가 시청하게 된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절 메시지가 떠오른다. 이 나라의 최고권력 대통령이 한 노동절 메시지이니 새겨서 읽어 보기 위해 인터넷포털을 뒤져 그 전문을 찾아내 읽어 본다. 노동절이 기념하는 노동자투쟁의 역사를 가진 나라 미국에게 코로나19 방역의 모범이라 평가받고, 미국만큼 최악의 실업까지는 아닌 이 나라의 대통령이 직접 우리 노동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이니 “제130주년 세계 노동절을 맞았습니다”라는 첫 문장부터 꼼꼼히 읽는다.

2. 문재인 대통령은 메시지의 서두에서 노동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로 희생된 노동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해마다 수많은 산재사고가 발생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숨지고 있다. 정부 공식통계상으로도 매년 약 1천명 안팎이다. 그나마 관리감독을 강화해서 지난해에는 855명으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수준을 달성했다고 지난 1월8일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자평했다. 그것이 단순히 경기침체에 따른 작업물량 감소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는 이후 사망자수 추이를 살펴봐야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자화자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보도자료에서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산재 사고 사망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업에 중점을 두고 정책 역량을 집중했”고, “소규모 건설현장에 대해 안전보건공단과 매일 순찰(패트롤) 점검반(168개, 순찰차 27대)을 운영해 지역별로 샅샅이 점검했”던 것이 사상 최저의 산재사고 사망자수를 만들어 냈노라고 노동부는 밝혔다. 그런데 현재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를 두고서도 감히 그렇게 자평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사고는 우레탄 발포 작업, 유증기, 폭발, 샌드위치 패널 등 사고에 취약한 물류창고 현장, 관청의 허술한 행정과 대부분 일용직인 인부들에 대한 안전교육 미실시,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조급한 공사강행이라는 원인까지도 4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2008년 1월 이천 물류창고 사고의 재발이었으니 말이다. 노동부가 지난해에 산재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했다는 것처럼, 화재사고 발생 위험이 매우 높은 물류창고 공사와 관련해 그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매일 순찰 점검반을 운영해 샅샅이 점검했더라면 2008년 사고와 판박이인 이번 사고 발생을 막지 못했을 리가 없다. 보도자료에서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올해부터 원청의 책임이 대폭 강화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는데 이를 현장에 잘 정착시킨다면 사망 사고를 줄이는데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노동부가 얼마나 원청의 책임이 대폭 강화되도록 관리감독했는지 의문이다.
2008년 사고가 발생한 직후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일일상황점검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서는 이천 화재참사의원인과 관계기관의 초기 대응 조치를 비롯한 수습 과정 등을 세세히 점검하면서 유가족·부상자 등에 대한 법률적 지원 방안과 제도 개선 점검 등 정부 차원의 사후 수습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그 재발방지 대책은 제대로 마련돼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오늘, 그는 다시 정부차원의 방지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노동자의 산업안전을 위한 일을 자신의 소임으로 한다면 국가권력은 사망 노동자의 명복을 비는 것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3. 이어서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오랜 노력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 근로제가 이뤄졌고 우리 사회는 양극화를 극복해 가고 있”다고 메시지에서 말하고 있다.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아무개가 하는 응원의 말인가 하고 읽다가 그가 결코 나 같은 아무개일 수 없는 대통령이란 걸 깨닫고서 다시 읽어보았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 근로제’. 모두 대통령이 되면 하겠다고 약속했던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은 기존 최저임금액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그걸 이행하지 못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를 하고, 거기에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산입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많은 노동자들에게 실제로는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어 버렸다. 촛불대선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말했지만, 공공기관조차 자회사 설립을 통해 직접 고용을 외면하고 자회사 고용이라는 방식이 당연하게 추진돼 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입법을 마련해 추진해 왔던 것도 아니다. 주 52시간 노동제는 더 할 말이 많다. 법이 정한 주 40시간 노동제를 법정근로시간제로 실효성 있게 운영하도록 노동부가 노동행정하도록 해야 했다.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50조의 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제는 도대체가 명목뿐인 노동제로 방치하고 있다. 나아가 1주일은 일요일 등 휴일을 포함해서 7일이 아니고 나머지 6일 또는 5일이라던 잘못된 행정해석을 바로잡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음에도, 주 52시간 단축법을 통해 예외와 유예를 허용했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입법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중소영세 사업장의 노동자에겐 뒤늦게 적용하고 예외로 하는 등으로 차별했다. 이로 인해 공공기관 대기업 사업장과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 간 임금·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4. 이렇게 메시지를 읽고 보니,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존중 사회 실현’ 공약은 여전히 공약에 머물러 있는 것인데도, 대통령은 그것이 실현됐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이며, 주류로서 모든 삶을 위한 '연대와 협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도 이 나라에서 아직은 노동자가 주류가 아닌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착각해서 노동자에게 ‘연대와 협력’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상과 같이 내가 메시지를 읽었다고 해서 메시지에 담긴 그의 진정마저 읽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늘 코로나19 사태에서 노동자를 위해 “혼신을 다해 일자리를 지키”고, “안전한 일터로 산재를 줄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진심이 부디 이 나라에서 지켜지기를 바라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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