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대법원은 2015년 2월26일 도급과 구별되는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설시했다. ① 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② 당해 근로자가 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③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④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⑤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이나 명칭이 아니라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위 다섯 가지 판단요소를 살펴보고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근로자파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위 판단기준 ①·②는 근로자와 원청(사용사업주) 사이의 사용관계를 보여주므로 근로자파견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징표다. ③·④·⑤는 도급계약과 수급인의 실체를 규정한 것으로 도급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징표로 이해되고 있다. 이후 불법파견 소송에서 근로자는 주로 ①·②에 해당하는 주장·증거를 제시해 근로자파견이라고 주장하고, 사용자는 ③·④·⑤에 대한 주장·증거를 제시하며 적법한 도급이라고 주장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법원은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원청과 근로자 사이의 사용관계(판단기준 ①·②)가 어느 정도 인정되더라도 도급계약과 수급인(하청)의 실체가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적법한 도급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안다. 즉 법원의 ‘종합적 판단’은 판단기준 ①·②와 ③·④·⑤ 사이에 어느 징표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지를 따지는 이른바 ‘49 대 51’ 판단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로자파견과 도급을 구별하는 이유가 ‘누구에게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는 노동법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법원의 이러한 ‘종합적 판단’은 다소 의문스럽다. 근로기준법 9조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중간착취를 금지해 근로자를 사용한 자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직접고용원칙). 다만 직업안정법상 근로자 공급사업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고용과 사용이 분리된 3면 관계를 허용하되, 타인의 취업에 개입해 영리를 취하거나 임금을 포함해 기타 근로자의 이익을 중간에서 착취하는 종래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사업의 경우 노동조합으로 한정하는 등 엄격한 제한요건을 두고 있다. 근로자파견 역시 고용과 사용이 분리되는 근로자공급사업의 한 유형으로 근로기준법 9조에 따라 원칙적으로 금지되나, 예외적으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적법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파견법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적법한 근로자파견 외에 고용과 사용이 분리된 다른 모든 형태의 근로관계를 불법파견으로 보고 사용자책임 회피 방지를 위해 이를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법체계상으로도 도급은 동등한 시민 사이를 규율하는 계약법상 전형계약이고 근로자파견은 힘의 불균형을 전제로 한 노동법 영역에 있다. 노동법은 계약법의 한계를 수정하며 탄생한 특별법이므로 우선 적용돼야 한다. 따라서 일단 원청과 근로자 사이에 사용관계가 인정되면(판단기준 ①·②) 설령 도급의 성질이 있더라도(판단기준 ③·④·⑤) 직접고용과 노동보호를 원칙으로 한 노동법 영역에서 판단돼야 한다.

개념적으로도 도급은 ‘수급인에 의한 일의 완성’을 요건으로 하므로 도급계약과 수급인의 실체를 규정한 판단기준 ③·④·⑤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논리 필연적으로 도급관계를 설정할 수 없다(필요조건). 이 경우 원청과 근로자는 하청의 실체 유무에 따라 묵시적 근로관계 내지 근로자파견 관계 중 어느 하나만을 설정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도급계약과 수급인의 실질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판단기준 ③·④·⑤) 원청이 근로자를 자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해 지휘·감독하면(판단기준 ①·②) 사용과 고용이 분리된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 이때 원청이 파견법상 대상업무·파견기간·허가 같은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파견법이 금지하고 있는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결국 원청이 근로자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고, 공동작업을 하는 등 원청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다면(판단기준 ①·②) 원청과 근로자 사이에는 사용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계약법이 아닌 노동법 영역에서 근로자파견이 적법한지 여부(대상업무·파견기간·허가)를 판단하면 된다. 이때 도급계약과 수급인의 실체를 갖췄는지 여부(판단기준 ③·④·⑤)는 원청과 근로자 사이의 관계가 묵시적 근로관계인지 근로자파견 관계인지 여부를 검토하는 자료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종합적 판단’을 다섯 가지 판단기준을 기계적으로 열거하고 비교하는 ‘49 대 51’ 판단이 아니라, 사용자책임 회피 방지라는 노동법 취지와 법체계·개념논리에 따른 단계적·유형적 판단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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