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참사 같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예방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양형기준을 상향해 달라는 의견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한 데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부 5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 확정
산업안전보건제도 개편 준비


10일 정부에 따르면 노동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포함해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효과적인 제도개선책을 만들기 위해 조만간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연말까지 연구를 마무리하고 산업안전보건제도 개편을 추진한다. 노동부 산하 ‘산업재해보상보험및예방심의위원회의’가 지난달 29일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5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심의·확정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심의위 회의가 열린 날은 이천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정부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여부를 검토하기로 한 것은 현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제도로는 산재예방에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1심 법원이 선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6천144건 중 징역·금고형이 선고된 경우는 35건에 불과하다. 대법원 판결도 하급심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비교형사법학회는 노동부 의뢰를 받아 2018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결 분석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따른) 실형 집행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희귀한 형벌이 되고, 그것도 6개월 혹은 길어야 1년을 넘기기 힘든 단기 자유형 몇 건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법인은 적지 않은 돈이 드는 안전·보건조치라면 이를 행하지 않고, 그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150만~200만원의 벌금으로 대응하고, 근로자가 사상하면 손해배상과 보상으로 피해자와 유족에게 처벌불원 의사만 받아 내 경제적·법적 책임을 정리하자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했지만
“원청 최고경영자 처벌 어려워”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고 김용균씨 죽음이 기폭제가 돼 2018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는 점도 제도개선 논의를 촉발한 배경으로 보인다. 전부개정안은 원청이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아 하청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원청 책임자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업에 산재예방 책임과 처벌을 강화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기업에 산재예방 책임을 중하게 부담시키려 했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한계 때문에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며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의 법이 아닌 데다가 직접 행위자가 아닌 원청 최고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는 등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처벌을 강화해야 기업이 산재예방 경영을 강화하리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재갑 장관은 지난 8일 이천 산재사고 관련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기관회의에서 “산재사망 사고가 계속됨에도 사업주 처벌이 낮은 상황”이라며 “정부는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관련 양형기준을 상향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법 위반사건을 별도의 범죄군으로 다뤄 안전보건조치 미이행, 작업중지조치 미이행 같은 범죄행위를 중하게 처벌해 달라는 취지다. 현재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과실치사상범죄 중 하나로 판단하고 있다. 양형을 올리면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이 양형기준을 상향해도 대형 사업장에 미치는 효과는 적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검찰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에 대해 기소를 하는 사례가 매우 적고, 처벌까지 가더라도 하급관리자·위반행위 노동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하청이나 자회사 등으로 안전보건책임 소재가 있는 업무를 이전해 놓은 원청이 많아서 (법원이) 양형을 높이면 말단 직원 처벌수위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계는 기업 최고 경영자나 실제 권한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산재예방정책을 펼치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반대한다. 최명선 실장은 “노동부가 자기 방향을 정확히 하고 제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김동명 위원장의 공약으로 올해 한국노총이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며 “더불어민주당과 정책협의 과정에서도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재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실효성 있게 처벌할 방안이 무엇인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검토하고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장단점과 실제 작동할 수 있는지,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살펴 사업주의 경각심을 높일 방안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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