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고용보험이 화두가 되고 있다. 4·15 총선에서 민중당이 공약했고, 최근 청와대와 여당 관계자들이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용보험 미가입에 대한 사회안전망 부족 문제가 불거지면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용보험료 인상과 사용자 부담, 고용보험 재정건전성 같은 문제를 감안하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각지대 임금노동자와 특수고용직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까지는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1995년 7월에 도입된 고용보험 제도가 30여년 만에 새로 태어나는 계기가 마련될까. 그러려면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할까.

‘K방역’에서 ‘K사회보장’으로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예상보다 반응이 빠르고 뜨겁다. 민주노총은 4·15 총선 직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재난 시기 모든 해고금지’와 함께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과 사회안전망 확대’를 제안한 바 있다. 이를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와 함께 필요하다면 보험료 인상 같은 구체적 실현 방안을 함께 논의할 용의도 있음을 밝혔다.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코로나19 위기에 국민 건강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과 비정규 노동자·자영업자까지 포괄해서 고용 안전망을 구축하자는 취지다.

그 이후 청와대발 적극 검토 입장과 함께 총선에서 압승한 거대 여당도 21대 국회 최우선 입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좋은 제도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이런 제안을 실현할 구체적 제도설계와 추진 로드맵이 필요하다.

취업자 2천735만명 중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 각 단위별로 사회연대 관점에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

재원대책도 본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사가 내는 고용보험료가 각 0.8%로 총 1.6%에 불과하다. 고용안전망이 잘 갖춰진 유럽 국가의 경우 오스트리아 6%, 프랑스 6.4%(노동자 2.4%, 사측 4%), 독일 3%로 우리보다 부담률이 월등히 높다. 정부 기여금도 물론 많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정부가 앞장서고 21대 국회가 최우선 입법과제로 추진하되, 사회적 논의의 시작은 국무총리 주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적절하다. K방역 그 다음은 K사회보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K방역을 만든 우리가 K사회보장,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도입하지 못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31년 전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던 것처럼. 전례 없는 미증유의 위기에 기존의 소극적 방식으로 안 된다. 보다 과감하고 전향적으로 가야한다. 지금은 국가의 시간이자 노동의 시간이다.

현실화 위한 과제 산적, 범정부 차원 로드맵 준비해야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다만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고용보험료 징수와 실업급여 지급은 소득을 기준으로 적용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 행정은 일하는 사람들 모두에 대한 소득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소득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그래서 징수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인프라가 사실상 없다. 노동부는 매달 소득을 확인하지 않아 왔기 때문에, 가야 하는 목표가 정해지더라도 그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자영업자의 경우 1년에 한 번 국세청에 세금 신고를 하는데, 이런 인프라로는 고용보험을 운용할 수 없다.

특수고용직이나 자영업자가 매달 소득을 스스로 신고하고, 소득세와 함께 사회보험비를 통합 징수토록 하는 정도의 엄청난 행정혁신이 없으면 구현하기 몹시 어렵다. 노동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상당한 기간 노력을 집중해야 가능하다.

국회에 특수고용 노동자와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핵심으로 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최소 60만명 정도가 고용보험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소득 기준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최초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매우 중요한 정책적 실험을 하는 계기를 만드는 법안이다. 이후 이 경험을 토대로 국세청의 조세행정과 연계하는 행정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 고용보험뿐 아니라 건강보험·국민연금 문제도 함께 풀어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이 같은 로드맵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미 노사정이 합의, 20대 국회 문 닫기 전 처리하라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

▲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


코로나19 위기로 고용위기 상태에 놓인 노동자는 통계로만 보더라도 특수고용직 220만9천명, 15시간 미만 단시간 노동자 93만2천명, 영세사업장 노동자 378만3천명을 포함해 728만명에 이른다. 이 중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는 고용보험 미가입자가 459만명이다. 코로나19로 소득을 상실하고 생계가 곤란한 노동자에 비해 고용안정망은 너무나 허술하고 취약하다.

2018년 기준 실업자 중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절반에도 채 못 미치는 45.6%에 불과했다. 정부가 고용보험의 넓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배제되는 취약계층이 계속 생겨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전 국민 고용보험 적용은 2017년 노사정과 학계 전문가가 참여한 고용보험제도 개선TF와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이미 의결한 사항이다. 이를 토대로 특수고용·예술인 노동자 등에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한국형 실업부조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일자리정책 5개년 로드맵에는 2020년부터 한국형 실업부조제도 시행을 명시하고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도라는 이름으로 올해 예산 2천771억원을 반영했지만 국회가 관련 법령을 제정하지 않은 탓에 꽁꽁 묶여 있다.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코로나19 고용위기 대응을 위해 최우선 입법으로 처리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130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공동성명을 통해 천명했다. 이제 국회가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시라도 빨리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을 손봐야 한다.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 있어야
이승용 한국경총 고용정책팀장

▲ 이승용 한국경총 고용정책팀장


코로나19로 인한 고용대란이 우려되는 만큼 고용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경영계도 공감한다. 그러나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가입대상·가입방식·부담능력·재정안정성 같은 다양한 쟁점이 있는 만큼 시간을 갖고 충분하게 검토해야 한다.

우선 ‘모든 국민’이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취업 의사가 전혀 없는 학생이나 주부, 취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초고령의 어르신들까지 모두 가입시키는 것은 노동시장에 진입한 피보험자들이 겪게 되는 실업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 역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일례로 현재 임의가입 방식인 ‘자영업자 고용보험’을 의무가입으로 바꾸는 방안도 가능하나, 이는 보험료 부담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비즈니스모델이 일반 근로자와 근본적으로 상이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을 근로자 계정에 가입시키는 것은 이들의 근로자 지위 인정 문제를 둘러싼 노사갈등, 자유로운 입·이직에 따른 반복수급 등 도덕적 해이와 재정불안, 그리고 업계의 고용부담 가중에 따른 고용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초단시간 근로자, 65세 이후 신규 취업자의 고용보험 가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기준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 93만2천명 중 절반 정도가 보건사회복지, 도소매·숙박음식업처럼 중소영세기업이 다수인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단축 규제에 코로나19 피해까지 입은 중소영세 기업들에게는 추가적인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의 구직난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끝으로, 최근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방안으로서 노사정 합의를 거쳐 마련된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을 앞두고 있다. 전례 없는 고용위기가 우려되는 만큼 우선적으로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조속히 추진하는 한편 고용보험 가입 확대 문제는 경제여건, 국민과 기업의 부담능력, 재정건전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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