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큰손 장영자(76)씨가 한 달여 전 네 번째 사기범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확정받았다.

장씨는 남편 고 이철희씨 명의의 삼성전자 주식 1만주가 담보로 묶여 있는데 이를 푸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속여 지인들에게 6억여원을 챙겼다. 검찰수사 결과 이철희 명의의 삼성전자 주식은 아예 없었다.

각종 사기로 3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장씨는 2014년 남편 이씨가 죽은 뒤 2년여 동안 지인들을 상대로 또다시 사기행각에 나섰다. 일흔을 넘긴 고령에도 장씨의 사기는 멈추지 않았다. 장씨는 이번 징역까지 살고 나오면 33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장씨의 남편 이철희는 43년 일본군에 들어가 해방 이후 육사 2기로 임관했다. 61년 육군 방첩부대장을 지내다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에 가담해 중앙정보부 설립에 참여했다. 주로 김대중 납치 같은 지저분한 사건에 개입한 공로로 중정에서 승승장구해 73~78년까지 차장을 지냈다. 그 공로로 79년 3월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도 지냈다.

장영자는 두 번의 결혼 실패 끝에 79년 유정회 국회의원이던 21살 연상의 이철희를 만나 80년 2월 결혼했다. 장영자는 이순자의 삼촌 이규광의 처제였다. 5공 정권이 들어서자 대통령 친인척이 된 두 사람은 82년 2월 서울 장충동 사파리클럽에서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초호화판 결혼식을 다시 올렸다.

이철희·장영자 부부는 전두환 대통령 처삼촌 이규광의 위세를 업고 돈놀이 끝에 83년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6천404억원의 금융사기를 저질렀다. 나란히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언론은 이를 ‘장영자 사건’이라고만 불렀다. 기자들은 장씨가 ‘대통령 친인척’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쓸 수 없었다. 지금 같으면 대통령을 향한 언론의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그때는 모두 장영자의 사기수법에만 초점을 맞췄다. 장영자와 영부인 이순자의 연결고리를 언급하는 용기 있는 언론은 없었다.

장씨는 이씨를 만나기 전부터 범죄전력이 있었다. 장씨는 서른네 살이던 78년 신안 앞바다에서 출토된 유물을 몰래 사들였다가 구속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때 중정에 잡혀 온 장영자를 이철희가 취조하면서 처음 만났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는 스님의 소개로 만났다고 밝혔다.

라임·신라젠·밸류인베스트코리아 등 요즘 곳곳에서 금융사건이 터져 검경의 수사가 한창이다. 금융사기 피해자들이 수천명이고 피해액도 조 단위가 넘는다. 피해자들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중산층부터 붕어빵 노점상 같은 빠듯한 삶을 이어 가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장영자 사건처럼 대형 사기꾼 뒤에는 늘 권력집단의 뒷배가 있기 마련이다. 굳이 권세가가 적극 나서지 않아도, 사기꾼이 먼저 권력팔이를 부추긴다.

조희팔·주수도 같은 대형 사기꾼은 한결같이 법조계와 정관계의 비호 속에 독버섯처럼 자랐다.

대법원이 장영자의 형을 확정하던 지난달 9일 부산 사하구의 한 하수도 공사장에서는 50대 후반의 중국 이주노동자 3명이 맨홀에 들어갔다가 모두 질식해 숨졌다. 소방당국 조사 결과 맨홀 내부 일산화탄소 농도는 측정기로 확인할 수 있는 최대치인 1천피피엠(ppm)이었다. 작업 가능한 허용 농도 50피피엠보다 최소 20배 이상 높았다. 안전장비 없이 위험한 작업장에 노동자를 밀어 넣는 기업을 처벌하라는 여론이 잠시 형성됐다. 언론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를 계기로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잠시 주목하지만 이번 회기에 처리되기는 난망해 보인다.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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