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공인노무사(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실장)

코로나19 여파로 집회도 못하고 조합원 교육도 못한다. 노동절 집회마저 못한다니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노조간부들도 있다. 그래도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정신없이 3·4월을 보냈다.

코로나19로 인한 개학연기로 방학 중 비근무 조합원들이 휴업수당도 못 받고 3월 보릿고개를 맞게 됐다. 싸워야 했다. 파업투쟁도 아닌 출근투쟁을 기획하며 코로나19로 위축된 조합원들이 나와 줄까 우려했다. 역시 조합원들은 노조를 믿고 함께해 줬다. 3일 동안 연인원 1만명이 본인의 학교를 찾아가서 출근 요구를 하고 인증샷을 찍었다. 그 힘으로 3월 중순부터 모든 교육청의 출근지침이 내려졌다.

한편에서는 4월 총선 투쟁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2월 초 일찌감치 치른 대의원대회에서 민중당 비례경선에 참여한 학교비정규직노조 김해정 후보의 당선을 목표로 뛰자고 결의했다. 민중경선제로 김해정 후보가 비례대표 후보 1번이 되고 민중당이 3%만 얻으면 무조건 당선인 상황이었다. 6명의 간부가 당을 알리기 위해 지역후보로 출마했다. 전국의 모든 간부들이 학교를 방문과 조합원 전화 선거운동(콜링운동)을 시작했다. 6만명의 조합원이 있는 대부분 학교를 직접 찾아갔고, 10만명의 지지자 명단을 받았다. 당원 2천명을 확대했고, 정치후원금을 3억원 모았다. 진짜 비정규직 설움을 아는 비정규직 국회의원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 보자는 호소에 조합원들이 마음을 모아 줬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계급투표 방침을 실천한 선거를 치렀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지지율 3%에 한참 못 미친 1.02%. 비정규직 국회의원을 만들지 못했다. 선거는 이겨야 한다. 선거투쟁이 간부들의 자위적 평가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노조를 넘어 전체 선거판 얘기를 좀 해 보자.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의 성적은 초라하다. 민주노총 지지 진보정당은 정의당을 빼고 모두 원외 정당이 됐다. 6석 정의당도 180석 거대 여당이 탄생한 21대 국회에서 존재감 있는 활동을 펼치기 쉽지 않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4년 후를 준비할 것인가. 180석 더불어민주당은 태생적 우유부단함 때문에 4년 후 분명히 민심의 냉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럼 다시 황교안·나경원·김진태가 국회의원이 된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암울하다.

2024년 진보정치가 더불어민주당에 등 돌린 민심의 대안으로 자리 잡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2004년 진보정당 첫 원내 진출을 이루고,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민주노동당의 영광을 4년 후 다시 맛볼 수는 없을까.

그래서 진보정치는 다시 20년 전 ‘민주노동당 창당 정신’으로, 민주노총은 25년 전 ‘노동자 정치세력화 강령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기득권 수구세력은 철저히 계급투표를 했다. 서울 강남 3구 투표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사는 정치 1번지 종로에서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의 득표가 유일하게 앞선 동네가 바로 부자들이 많이 사는 평창동과 사직동 두 곳이었다.

보수 기득권 진영은 선거 승리를 위해 당을 통합하고 위성정당도 만들고 계급투표도 한다. 여러 진보정당을 조합원들이 알아서 지지하라는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허울만 좋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민주노총 강령에 대한 ‘방임’이다.

아직 감정의 골이 깊은 진보정당들이 알아서 통합할 수 없다면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상층 중심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진보정치 단결과 통합운동을 벌여야 한다. 정의당의 전태일 3법과 민중당의 전 국민고용보험제, 노동당의 공공 무상정책이 모두 민주노총의 정책방향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 진보정치가 더 계급적으로 단결해야 할 때다.

지난해 말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1노총이 됐을 때 보수언론은 ‘민주노총당’에 대한 ‘우려성’ 기사를 내보냈다. ‘100만 조합원이 다 같이 민주노총당에 투표하면 어떡하나?’

그 우려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100만 조합원이 가족 3명만 조직해서 하나의 진보정당에 투표해도 400만표다. 21대 총선에서는 딱 15% 득표율이다.

2004년 60만 조합원의 힘으로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3.1%를 얻었다. 100만 조합원의 힘이 모이고, 진보정치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면 20% 득표도 가능하리라.

모두가 ‘코로나19 이후 다른 세상’을 얘기한다. 노동자는 또다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 주체가 될 것인가, 공공성 강화와 보편적 복지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주체가 될 것인가. 코로나19는 우리에게도, 진보정치에도 큰 기회이자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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