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1. 벌써 3주 전인가. 코로나19로 세상은 쑥대밭이 돼도 시간은 잘도 간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손바닥만 한 소책자 ‘권유하다’를 갖고서 사무실에 찾아왔던 것이 4월 초였는데 그새 4월 말이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문제를 이야기했다. 코로나19는 사업장의 크기를 가리지 않건만,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이 나라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 그렇다. 오늘 코로나19 사태가 닥친 세상은 빈부귀천을 확연하게 가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프랑스 부유층의 ‘파리 탈출’ 러시를 보도했다. 부촌으로 유명한 파리 16구는 지난달 17일 봉쇄령 발효 전까지 주민 15~20%가 소도시로 빠져나갔고, 이로 인해 별장 등이 있는 휴양지에는 봉쇄령 2주 만에 인구가 두 배 불어났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덮쳐 오자 플로리다나 버몬트 등에 위치한 외곽 별장으로 부호들이 몰렸으며, 이들은 아예 외딴 섬을 구입하고 있다. 아시아도 비슷하다. 25일 뉴욕시 집계를 보면 맨해튼 인구 10만명당 코로나19 확진자는 992명이지만 가난한 동네인 브롱크스와 퀸스는 각각 2천308명·1천868명에 달했다. 생계를 위해 감염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과 감염을 피해 휴양지 등에서 보내는 부자들의 일상은 대비된다고 보도했다. 이뿐이겠는가. 100년 전 스페인독감에서 그랬던 것처럼 잘사는 나라냐 아니냐를 가를 것이고, 나아가 부호가 아닌 이들 사이에서도 가를 것이다. 빈부귀천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달라지고 있다. 분명히 코로나19는 사람의 빈부를 가려 감염시킬 차별의 눈은 없는 것인데, 이렇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피해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은 빈부귀천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이 세상이 문제인 것이다. 코로나 방역에서 모범으로 평가받는 이 대한민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노동자들 사이에도 그렇다. 한상균 전 위원장은 휴업수당조차 못 받는 5명 미만 사업장, 고용보험 미가입 노동자와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위한 긴급대책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행동으로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를 조직해 그 대표로 활동하게 됐다고 내게 말했다. 노동자들 중에서 코로나19 사태로 크게 피해를 입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권리찾기를 한다는 것인데, 그 취지에 적극 동의한다는 것 말고 어찌 이견이 있겠는가.

2. “해고 반대? 우리는 차별과 해고가 일상입니다.” “머리띠 매고 투쟁하는 당신들이 밉기도 부럽기도 했습니다.” “죽기 전에 단결투쟁 조끼 입고 ‘우리도 노동자다’ 외쳐 볼 수는 있을까요?”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상균의 편지에는 그가 이런 절규를 들으며, “반성했”고, “부끄럽고 미안했다”고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들을 위한 권리찾기를 동지들께 권유를 하게 된 것이라고 편지에서 말하고 있었다. 상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해고 제한에 관한 근로기준법 23조와 24조가 적용되지 않으니 정당한 이유 없이도 해고되고 긴박한 경영상 필요 등 요건과 절차 없이도 정리해고 당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해고 반대? 우리는 차별과 해고가 일상입니다”라는 이들의 말은 이 나라에선 법대로 당연한 말인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업장 휴업시 지급하는 휴업수당에 있어서도 이들에 대해 근로기준법에서 사용자가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게 정하고 있다.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정한 법정근로시간도, 이를 노사 당사자 합의로 1주 12시간 연장할 수 있도록 정한 근로시간제도 이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해도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 지급하는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도 없다. 그리고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도 적용되지 않으니 사용자 맘대로 제한 없이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까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권리를 읽고 있자니 그 법에 치밀어 오른다. 근로기준법이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되고,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11조), 대통령령인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별표1로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하는 법조항을 규정해서(11조, 별표1) 합법적으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차별하고 있는데 대해서 분노가 치민다. 이에 따라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자신을 차별해서 노동자 권리를 짓밟는 사용자가 밉고, 이런 법령을 만들어 집행하는 국가 대한민국이 싫겠지만, 차별 당하지 않고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머리띠 매고 투쟁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한상균의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고 할만하다.

3.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이 대한민국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겠다고 세상에 당당히 선언하고 근로의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면서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해서 만든 법이 근로기준법이다(대한민국 헌법 전문, 32조, 근로기준법 1조(목적) 참조). 사용자에 대해 노동자가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이런 헌법과 근로기준법은 필요 없었다. 이 자본의 세상에서는 노동자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니 노동자 권리에 관한 법을 만들어 보장하겠노라고 이 나라에선 근로기준법령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취지라면, 사용자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노동자일수록 국가 대한민국이 법을 통해서 그 권리를 보장해 줘야 했다. 보다 높은 수준의 권리가 보장돼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동법령은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법은 반대로 서 있다. 어찌된 일인지 5명 미만의 사업장 노동자에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권리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배제하고 말았다. 이뿐이 아니다.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에겐 아예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로 취급하지 않고 처음부터 배제해 버렸다. 이렇게 살펴볼수록 화가 치밀 수밖에 없는 법이건만, “법의 확대 적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한편으로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아울러 고려하면서 법의 법규범성을 실질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입법정책적 결정으로서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상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도록 한 근로기준법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고, 인간의 존엄성을 전혀 보장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는 이유로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는 결정한 바 있다.(헌재 1999.9.16. 선고 98헌마310 결정) 이 나라에선 헌법재판소조차도 뻔뻔했다. 그래도 20년이면 국가는 법의 확대적용을 위해 노력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해 줘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더는 안 된다고 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선언해 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4. 정부는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5차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55만개 일자리 창출과 특수고용직 생계지원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 및 기업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대책에서 소외돼 있던 이들에 대한 것인데, 정부는 특수고용직·프리랜서·영세 자영업자·무급휴직자 같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 93만명을 위해서는 1조5천억원을 투입해 월 50만원씩 최장 3개월 동안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2019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는 93만2천명, 일용노동자는 74만800명, 5명 미만 사업체 임금노동자는 378만3천명인데 턱없이 부족한 지급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정부 지원조차도 배제되는 노동자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 “죽기 전에 단결투쟁 조끼입고 ‘우리도 노동자다’ 외쳐볼 수”도 없는 이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생존 위협에 방치돼 버리는 것이다. 답답한 일이다. 지난 촛불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19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을 들춰 보았다. ‘나라를 나라답게’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집에서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 노동존중 사회 실현 항목들을 읽어 봤는데, 찾지 못했다. 공약을 하지 않았더라도, 오늘 코로나19 사태에 차별취급 당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공약하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령인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니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권리보장도 노동존중사회 실현의 대상으로 하겠다는 대통령으로서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적용이 배제되지 않은 우리 노동자들과 노동운동도 자신의 일로 여기고 근로기준법을 차별 적용하지 마라고 외쳐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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