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제 동생 태규는 용역노동자라는 이유로 가장 높은 곳에서 일했지만 안전화·안전모·안전벨트 같은 안전장비를 지급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수원지검은 회사에 책임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어요.”(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한국마사회는) 자기네 소속 기수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는 유족에게 개인사업자라 법적 책임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책임을 떠넘겼어요.”(고 문중원 기수 아버지 문군옥씨)

김도현씨와 문군옥씨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 섰다. 고 김태규씨는 지난해 4월 수원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했다. 고 문중원 기수는 같은해 11월 한국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에 없는 두 사람 얘기를 하는 유족의 목소리는 떨렸고, 울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 주최로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열렸다. 최악의 살인기업 1위는 지난해 포스코건설에서 올해 대우건설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산업재해사망 노동자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의 구호는 예년과 같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라.”

“다단계 하청구조가 원인”

이들은 원청이 비용절감을 위해 만든 다단계 하청구조가 죽음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최악의 살인기업 1위로 선정된 대우건설에서 2019년 1월 질식사고로 숨진 노동자 2명은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건설사가 비용절감을 위해 공기를 단축하고, 더 싼 재료를 쓰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라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강한수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는 “동절기에는 가능하면 공사를 보류하지만 건설사들은 공기단축을 위해 영하에도 콘크리트 타설을 한다”며 “콘크리트가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양생작업을 하는데, 싸다는 이유로 갈탄을 사용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두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콘크리트 타설시 질식사고가 계속되자 정부에서도 갈탄 사용을 자제해 줄 것을 권고했지만 대우건설은 콘크리트가 얼지 않도록 틈 하나 없이 꽉꽉 막아 놓은 공간 안에서 갈탄연료를 땠다”고 비판했다.

추락과 끼임은 흔하게 발생하는 건설산재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기업의 구조적인 살인행위’라고 불렀다. 고 김태규씨도 하청회사 소속이었다. 건설폐기물을 모으는 작업을 하던 고인은 수시로 승강기를 이용해야 했지만 승강기는 안전검사를 받지 않았다. 고인은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다. 그런데도 원청과 하청회사 관계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하청노동자에 집중된 산재사망은 통계로도 입증됐다. 2020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된 13개 기업에서 사망한 노동자 51명 중 40명(78.4%)이 하청노동자다. 2019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된 9개 기업에서 사망한 하청노동자 비율(68%)보다 늘었다.
 

정기훈 기자

“이주노동자·무늬만 개인사업자들 더 위험”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도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비용을 절감하되 효율을 극대화하는 마사회 외주화 전략과 ‘선진경마’라 불리는 경쟁시스템이 있다. 1993년 개인마주제가 실시되기 전까지 조교사·마필관리사·기수는 모두 마사회에 직접고용된 노동자였다. 이후 모두 외주화됐다. 마사회가 2020년 공개한 ‘기수의 재해 관련 보험처리 건수’에 따르면 기수 118명 중 77명이 재해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문 기수가 속한 부산경남경마공원의 선진경마 시스템은 기수의 어려움을 가중했다. 선진경마란 비경쟁성 상금을 줄이고 경쟁성 상금을 확대해 경마순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도록 한 구조다. 이 탓에 서울경마공원 기수 대비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의 기본급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고인은 이런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2015년 마주의 말을 경주마로 훈련시키는 조교사 자격증을 어렵사리 땄지만, 한정돼 있는 마방을 임차받지 못했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비용을 낮추려는 사용자의 이기심은 우리 사회 가장 연약한 구성원인 이주노동자의 산재 위험을 높였다. 공동캠페인단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104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이주노동자는 정주노동자가 기피하는 일자리인 3D 업종 빈 자리를 메웠지만, 고용허가제란 제도에 묶여 자신의 노동권을 지킬 수 없었다. 공동캠페인단이 고용허가제를 운영하는 고용노동부에 2020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을 준 배경이다. 2004년 실시된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사업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주노동자는 사업주 허가 없이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힘없는 약자에게 집중되는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해야 한다”며 “21대 국회가 열리면 국민과 시민의 생명·안전을 지킬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할 수 있는 법을 입법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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