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고 세계로부터 격찬을 받던 싱가포르 상황이 심상치 않다.

기숙사에 집단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침대로 가득 채워진 방에는 최대 20명까지 공동생활을 한다. 가장 큰 기숙사 단지에는 2만4천명이 거주하고 있다.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비위생적인 과밀공간에서 빠르게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는 국제사회로부터 선진국이라 평가받는 싱가포르의 국가 명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편으로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불평등이라는 싱가포르 사회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3월 중순에는 감염자가 200여명에 불과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 1만명을 훌쩍 넘었다. 신규 감염자 대부분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상황이 악화하면서 싱가포르 정부는 부분 봉쇄를 연장하고 시민들에게 가정에 머물도록 권고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기숙사를 벗어나지 말 것을 명령했고, 먹을거리 같은 생필품을 제공하고 있다. 기숙사에 집단거주하는 이주노동자는 30만명에 달한다.

1월 중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악화하기 시작했을 때 싱가포르 정부는 재빨리 국경 출입을 제한하고 전염병 확산 억제 조치를 취했다. 감염자 추적을 광범위하게 펼치고 무료진단을 신속하게 제공함으로써 3월 말에는 전염병 확산방지에 거의 성공한 듯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시민사회는 이미 2월부터 이주노동자들에게 바이러스 확산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숙사에 갇힌 이주노동자들은 감염 위험 때문에 내부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 못하고 싱가포르 정부가 제공하는 식료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노동자 중에서 고령자와 취약자 7천명만 선별해 안전시설로 옮겼을 뿐, 나머지 29만3천명에 대해서는 기숙사 격리 말고는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기숙사 위생 상태와 청소 여부를 점검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집단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방글라데시와 인도 같은 남아시아 출신이다. 이들에게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싱가포르 정부의 무대책과 시민사회의 무관심을 지적하기보다는 인종주의와 배타주의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식습관과 생활방식을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온 이주노동자 때문에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싱가포르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비난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를 더럽히지 말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 같은 1세계에서 온 백인종 이주민들은 싱가포르 사회 상류층을 구성하면서 호화로운 개인주택이나 고급아파트에 살고 있다. 하지만 3세계 빈국에서 온 유색인종 이주노동자들은 싱가포르 사회의 하류층을 차지하면서 비좁은 월셋집이나 기숙사 같은 집단거주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세계 일류를 자랑하는 공항과 항만, 병원과 공공시설, 고급 아파트와 상업단지 같은 싱가포르 인프라는 1세계에서 온 백인종 이주민이 아닌 3세계에서 온 유색인종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싱가포르로 돈 벌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모두 귀국한다면 싱가포르의 경제활동은 상당 부분 정지하고 사회기능은 하루아침에 멈출 것이다.

노동시장 맨 밑바닥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국가경제의 기초를 지탱하고 있던 가난한 이주노동자들. 그들이 바이러스 감염에 대규모로 노출된 싱가포르의 현 사태는 대한민국을 돌아보게 한다.

대한민국도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잘한다고 격찬받고 있다. 대한민국도 노동시장의 맨 밑바닥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국민경제의 기초를 지탱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에 이주노동자들이 수천 명씩 집단으로 거주하는 기숙사나 주거단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월셋방 같은 좁은 공간에 적게는 수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씩 단체로 거주하는 형태는 다반사로 발견할 수 있다. 지방에 소재한 공장들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이주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사업장을 찾아 나서야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뿌리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보건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복지정책과 더불어 현재의 일자리를 유지하되 실업 발생시 기본적인 생계를 지원하는 고용정책을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하는 데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일 때다.

어려울 때 함께하는 동무가 진짜 동무다. 코로나19 비상 상황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어깨동무할 때다. 26일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290만명에 이르렀다. 회복자는 70만명, 사망자는 20만명을 넘어섰다. 싱가포르의 확진자는 1만3천624명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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