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베네치아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남짓을 가면 밀라노에 도착한다.

이번 기차는 한국에서 예약한 민영 기차회사 ‘이탈로’의 노선이다. 국영 트렌이탈리아와 경쟁하는 관계에 있는데, 예약 시스템이나 탑승권을 운용하는 방식이 좀 더 세련됐다. 트렌이탈리아 기차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하려면 상당한 인내력을 발휘하거나, 한국 에이전시가 한 장당 몇 유로씩 수수료를 받고 발권하는 대행 예약사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다소 황당한 시스템이다. 이탈로는 최소한 그런 황당함은 없다. 하지만 이탈로는 대도시의 주요 간선을 중심으로 다니기 때문에 지방의 중소도시를 가려면 별 수 없이 트렌이탈리아를 이용해야 한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잘사는 동네다. 그래서인지 밀라노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면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들렀다 배웅을 받으며 내려가는 나이 든 이탈리아 부모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밀라노 첸트랄레역에 도착해 바깥에서 이 역사를 보면 ‘이 동네가 제법 먹고사는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다. 1931년에 지어졌다는 이 역사는 두 마리의 날개 달린 백마가 좌우를 지키고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다. 언뜻 보면 박물관으로 보이는 정도니 이 도시의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밀라노에 들른 이유는 오로지 밀라노 대성당을 찍고 가겠다는 목적밖에 없었다. 오후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을 하고 바로 지하철을 타고 밀라노 대성당으로 간다. 생각보다 줄이 길지 않아 금방 입장권을 사서 들어갈 수 있었다. 뭐 성당이란 게 다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밀라노 대성당은 그 엄청난 규모의 색색깔 대리석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여느 대성당들에 비해 돌의 화려함에서는 뒤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얼마 안 돌아본 것 같은데도 성당을 나오니 벌써 어둠이 깔렸다.

눈은 충분히 채웠으니 이제는 배를 채워야 할 ‘위장의 시간’이다. 밀라노에 오면 꼭 먹어 봐야 할 음식들이 있다고들 했다. 부산에 가면 밀면을 먹듯이, 이곳에 오면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Risotto alla Milanese)와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Cotoletta alla milanese)라는 음식을 꼭 먹어 봐야 한다고 했다. 오늘 하룻밤 자고, 내일 오전에 피렌체로 향해야 하는 일정이라 저녁 한 끼는 밀라노식으로 먹어 보기로 했다.

마침 들어간 식당의 나이 지긋한 주인 겸 웨이터 할아버지가 추천해 준 음식에도 이 두 가지가 포함돼 있었다. 음식 이름 뒤에 붙은 ‘밀라네제’라는 말은 ‘밀라노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둘 다 밀라노 사람들이 먹는 밀라노식 음식이란 말이겠다. 그중 첫 번째인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는 이름 그대로 밀라노식 리소토다. 일단 색깔이 보통의 리소토와는 다르게 강황 색깔을 띠는데, 강황 맛은 전혀 안나고 샤프란이라는 향신료를 넣어서 만든단다. 샤프란은 향신료 중에서도 제법 비싼 축에 낀다. 이런 샤프란을 흔한 집밥 메뉴인 리소토에 넣어 먹으면서 ‘밀라노 사람들의 리소토’란 이름을 붙인 걸 보며 이 동네 사람들의 과시욕과 허세가 느껴지기도 한다. 청담동식 백반 정도로 이해하면 되려나.

그런데 맛은 글쎄다. 향은 강해 코를 자극하는데, 맛은 싱거워 네 맛도 내 맛도 아니어서 고추장이라도 섞어 먹고 싶어지는 그런 맛이다. 뭐 이 식당이 맛집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으니 이 이상 맛 품평은 자제하기로 한다.

두 번째 음식인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 ‘뼈가 붙어 있는 밀라노식 소갈비 요리’라는 뜻이다. 그냥 보기에는 빵가루 묻혀서 아주 바삭하게 구운 돈가스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운 비주얼이다. 아마도 우리가 먹는 돈가스가 이곳에서 출발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팬 위에서 버터와 기름을 두르고 바싹 구워 만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이 흔히 먹는 돈가스처럼 기름을 먹어 부드럽게 부풀어 있다. 한입 물면 바삭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빵가루가 아니라 바싹 구워진 크런치한 과자 느낌의 빵가루가 입혀져 있다. 뭐 그냥 먹어 줄 만하다. 샤프란 넣은 리소토보다는 나은 맛이다. 와인 한잔을 곁들이면 퍽퍽함이 덜 해 좀 더 먹을 만해진다.

결론은 이렇다. 아주 맛이 ‘기깔 나서’ 밀라노에 오면 꼭 먹어 보는 음식이라기보다는 밀라노에 온 김에 먹어 보고 가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의 음식이고, 그 정도의 맛이다. 식당을 나와 숙소로 가는 길 양쪽으로 끝도 없이 명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걸 보니 여기가 패션과 명품의 도시 밀라노가 맞기는 한 모양이다. 24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한 도시를 보고 느낀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그 엇비슷한 인상 정도는 가져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밀라노 첸트랄레역과 대성당, 밀라네제 음식과 명품거리 정도가 밀라노에서 얻은 그런 인상이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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