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우리나라에서 철도가 개통한 뒤 철도노동자 2천456명이 산재로 숨졌다. 매년 21명이 숨진 셈이다. 통계에는 비정규직이나 자회사·협력업체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면서도 정작 철도·지하철 노동자는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노동안전보건 전문가들이 궤도노동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보내왔다.<편집자>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지난해 10월 밀양역 인근에서 일하던 선로보수 작업자들이 열차에 치였다. 25년 가까이 철도에 몸담았던 베테랑 직원은 유명을 달리했고, 젊은 작업자 둘은 크게 다쳤다. 이들은 굉음을 일으키는 공구(타이탬퍼)를 들고 선로의 자갈을 평평하게 다지고 있었기에 열차가 접근하는 걸 알 수 없었다. 숱하게 반복된 열차 접촉사고가 또 발생한 것이다.

지하철을 포함해 철도작업에는 늘 위험이 동반된다. 열차를 비롯해 선로·전철주·선로전환기처럼 쇳덩어리와 단단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에서 줄곧 일해야 해서다. 안전모 같은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하나, 거의 맨몸으로 물리적 위해요소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열차 접촉에 따른 중대재해가 아니어도 어딘가에 부딪히고, 눌리고, 찔려 상처가 나는 건 일상다반사다.

첨단 철도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넘쳐 나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근대 초기부터 이어져 온 육체노동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심지어 곡괭이질도 해야 하니 전(前) 근대와 근대, 그리고 후기 근대적 노동의 양상이 모두 포개져 있는 셈이다. 바꿔 말해 철도는 대단히 노동집약적 산업으로서, 육체노동 없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다수의 육체노동자가 일하다 보니, 정규·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산재가 많은 건 피할 수 없는 사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산재가 많은지는 의문이다. 과거 5년간 철도 운행거리 1억킬로미터당 작업자 사망률은 평균 3.5명으로 유럽에 비해 최소 두세 배 높다. 영국은 0.1명도 되지 않았다. 무엇이 현격한 차이를 만들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여기선 법·제도에 주목한다.

첫째, 하위법령을 통한 모법의 무력화다. 밀양역 사고로 돌아가 보자. 철도안전법은 밀양역 사고처럼 운행선로에서 작업할 경우 철도운행 안전관리자와 작업책임자를 반드시 배치하게 해 놓았다. 전자는 작업자 안전확보를 위해 운행열차 일정과 작업 일정을 조정한다. 후자는 작업 지휘·감독·안전관리 업무를 한다. 즉 이들은 안전 담당자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관료들은 인력부족 상황을 감안해 공문이나 하위법령에서 작업자가 안전업무를 겸직할 수 있게 열어 놓았다. 그 결과 서류상 철도운행 안전관리자와 작업책임자는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다들 작업에만 몰두했지 안전을 신경 쓸 사람은 없었다. 그럴싸한 제도는 만들되, 경영효율 목적의 단서를 덧붙여 안전을 저해한 것이다.

둘째, 철도는 철도안전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모두 적용되는데 두 법의 중첩 속에 맹점이 생겨나 안전을 위협한다. 밀양역 사고 당시 직급 높은 선임장이 관리감독자였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감독자는 작업수행을 감독하고, 노동자의 안전도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 관리감독자는 현장 멀리에서 열차 감시를 했다. 안전을 관리해야 할 사람이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관리감독자는 열차 진입을 무선으로 알렸지만, 작업현장에선 이를 듣고 대피시킬 사람이 없었다. 열차 감시자 혹은 안전 담당자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사고는 안 났을 것이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 현장 입회 관련 제약이 없기에 가능했다.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하는 관리감독자와 달리, 철도안전법상 작업책임자는 사측에서 지정하면 신참을 포함해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측은 관리감독자가 작업현장에 없더라도 아무나 작업책임자로 지정·활용해 작업을 시킬 수 있다. 제도의 맹점으로 인해 여러 형태의 겸직이 묵인되고 악용돼 안전인력이 부족해도 작업이 가능해진다. 만약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은 현장 작업자에게 전가된다.

셋째, 밀양역 사고와는 별개로 법령 간 충돌 속에 안전이 방치되고 있다. 철도는 건설에 막대한 공사비가 투여되는 만큼 완공 이후 시설의 위해요인 제거나 교체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설계와 건설에 인간공학과 산업안전보건법이 반영돼야 한다. 하지만 철도의 건설 및 철도시설 유지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철도시설공단이 지은 시설물 중엔 작업자 안전이 고려되지 않았을뿐더러 산업안전보건법과 충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작업자 대피공간 설치라는 산업안전보건법 기준을 위반한 채 건설된 터널들이 있다. 이런 위험한 곳이 비용 문제를 핑계로 수년간 법 위반 상태로 방치되며, 작업자는 위험을 감수하며 일한다.

넷째, 인력보유 문제는 관련 법들 사이에서 사각지대에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인력부족은 피로도를 높이고, 집중력을 저하시킴으로써 산재를 유발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다. 이 금기는 사회적으로 깰 때가 됐다.

정리하자면, 재해는 법ㆍ제도의 완화·맹점·충돌·허점을 파고들어 철도노동자를 덮친다. 관료와 경영자는 사고원인을 노동자의 수칙 위반 따위로 규정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나 책임의 사슬 정점에는 철도 작업환경·작업방식 등을 좌우하는 관료들이 있다. 이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도·시스템 역시 변하지 않고, 유사 사고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해방 이후 순직한 2천546명의 철도노동자에 대해 관료들은 책임을 통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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