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잠시 눈을 감고, 우리가 다 아는 유명한 사진 한 장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사진 속의 젊은 남성은 때 묻은 하얀 헬멧을 쓰고, 뿔테 안경을 꼈다. 마스크에 가려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양손으로 선전물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선전물의 내용은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 노동자입니다.”

김용균님이 죽기 1년반 전인 2017년 5월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공약에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내세웠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하겠다며 “상시적으로 행해지는 유해·위험한 작업의 사내하도급을 전면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유해·위험한 사내하도급의 “전면금지”를 약속했다.

김용균님이 죽고 나서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며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018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용균법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있는지를 보자.

먼저 도급금지의 범위는 매우 좁다. 산업안전보건법 58조1항은 근로자의 안전 및 보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에서도 도금작업를 포함한 3가지 유형만 도급금지 대상이라고 정한다. 그나마도 일시·간헐적으로 하는 작업은 도급금지 대상이 아니다(58조2항1호). 다른 한편 도급승인 작업은 대통령령에 전부 위임돼 있어서 언제든지 그 범위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 대통령령을 보면 “중량비율 1퍼센트 이상의 황산·불화수소·질산 또는 염화수소를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 또는 해당 설비의 내부에서 이뤄지는 작업(시행령 51조1호)”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하는 작업만 도급승인 대상이다.

김용균법은 만들어진 취지와 거리가 멀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상시적으로 행해지는 유해·위험한 작업의 사내하도급을 전면금지”와의 거리는 아주 멀다. 그랬기 때문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원·하청 간 사망률이나 산재 발생률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실증적인 증거가 나타난 업종이라도 도급승인의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건설·발전업종과 의료기관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부와 집권여당은 묵살했다.

또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된 김용균 특별조사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에 관해 “원·하청 구조는 흐름 공정을 분할하고 절단해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무수한 절차들과 공정들을 파생시키며 위험관리의 공백을 만들어 냄”이라고 진단했다. 그로 인해서 “분리 불가능한 주 설비 운전과 나머지 공정을 무리하게 분리시킴으로써 소통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구조적인 불법파견 논란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는 태안화력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업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문제다. 본래 원청이 하던 일 중에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업무만 쪼개서 도급했으므로 불법파견 혐의가 짙다. 또 본래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이뤄졌던 것을 억지로 쪼개 놨으므로 작업자 간 소통이 복잡해지고 위험관리의 공백이 발생했기에, 이를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김용균님이 들었던 선전물의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는 구호 속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모두 담겨 있다.

집권여당의 박용진 의원이 총선 직후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제 (야당 탓을) 못한다. 우리 책임이다. 다시 대선 공약집을 꺼내 보고 100대 과제를 열어 보면서 약속을 이행할 시간이다.” 정확한 진단이다. 민주·진보진영은 총 190석, 집권여당만 180석을 얻었다. 이제 문재인 정권은 위험의 외주화를 전면금지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이행할 일만 남았다. 피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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