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7다217724·2017다217731(병합) 판결

1. 사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는 신차 개발업무를 하고 있다. 연구원은 현대자동차 소속 근로자로 정규직이지만, 개발 중인 차량을 생산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사내협력업체 소속이다. 남양연구소에서 신차 개발을 위한 생산공정은 울산공장 같은 차량을 양산하는 공장처럼 대규모 생산체계로 운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공정 구성과 흐름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양산 공장에서 정규직이 도장·의장을 포함한 생산라인에서 직접 그 생산 작업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남양연구소 정규직은 연구원으로서 생산라인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원고들은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 이런 남양연구소에서 신차 개발을 위한 생산공정 중 도장공정 업무에 종사했다. 이처럼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신차 도장공법에 대한 연구·개발을 하면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인 원고들은 개발 중인 차량 생산공정 중 도장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현대차 소속 정규직(연구원)들이 그 결과를 분석해 문제점을 확인·점검하고 협력업체 근로자들과 피드백하고, 이를 통해 원고들이 다시 도장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연구·개발업무를 수행했다. 이에 대해 그 협력업체인 서은기업㈜ 소속 근로자 박○○ 등 4명이 2014년 10월10일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며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 상당(정규직과의 임금 차액)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서울중앙지법은 2016년 2월5일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며 피고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로 인정돼야 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2심 서울고법도 2017년 2월10일 동일한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에 불복해 피고 현대자동차가 상고했다.

2. 쟁점

원고측이 울산공장을 포함한 피고의 양산 공장과 다름없이 남양연구소 신차 개발을 위한 생산공정에서 종사하는 사내협력업체 근로도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피고는 양산 공장과 달리 남양연구소에서는 정규직은 연구원으로서 직접생산공정에서 작업을 수행하지 않고 연구·개발업무에 종사한다며 원고들의 근로는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피고 정규직(연구원)과는 근무장소가 다르고 업무가 구분돼 있다고 피고는 주장했고, 이에 대해 원고측은 신차 개발을 위한 업무에서 밀접하게 연관돼 근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로자파견의 판단요소 중 피고가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던 것인지가 크게 논란이 됐다. 피고는 연구원인 정규직들이 긴급히 작업내용을 통지하고 수행 작업을 검증하기도 했던 것은 도급계약의 대상업무를 특정해 주고 그 업무 결과를 검수해 준 것이라서 도급인의 지시권 행사이고 도급 결과를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원고측은 대법원 판례가 판시해 온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 요소들을 살펴 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는 그 기준 요소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양산 공장 근로자파견 사건과 구별되는 특별한 쟁점은 앞에서 살펴본 원·피고 간 주장에 관해서였다.

3. 판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2015년 피고 아산공장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 사건(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에서 판시했던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을 인용하고서 그 판단기준 요소별로 구체적으로 그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중 앞에서 언급한 주된 쟁점에 관한 판시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대법원은 ① “원고들은 피고의 남양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로서 피고가 정한 생산계획에 따라 피고 정규직 근로자들과 근무시간에 맞춰 자동차 생산공정 중 일부에 참여해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했으므로, 피고로부터 작업량·작업방법·작업순서·작업장소·작업시간 등을 직접 개별적으로 지시받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고 ② “피고는 수시로 작업방법을 변경하기도 하고 피고 정규직 근로자들이 직접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긴급히 처리해야 할 작업내용을 통지하기도 했”으며, “업무의 수행과정에서 협력업체 또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작업재량이 거의 없어서 이를 거부하는 것이 사실상 허용되지 않았”고 ③ “도장업무는 도장공법 등에 관한 피고 차원의 연구·개발 작업을 직접적으로 시행하는 수단으로 기능함으로써 피고의 작업성 검증을 포함한 전체 연구·개발 업무와 밀접한 연관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판시 파이롯트차 제작에 관한 전후 공정에서 피고 정규직 근로자들이 수행한 검증 등의 작업과 상호 연동해 이뤄졌다”는 점들을 적시해 판단했다. 이 외에도 ④ 도장업무의 세부공정에 몇 명의 근로자를 투입하고 그 작업시간과 작업의 방법·순서·내용·속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피고에 의해 결정된 반면 협력업체가 독자적으로 행사할 권한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도 적시했는데, 이는 ①과도 관련돼 있는 것이다.

4. 평가

위 대법원의 판시 내용을 보면 원청업체인 피고 소속 근로자들과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동일한 공정업무에 종사해야 한다고 보지 않았다. 피고 남양연구소의 개발 차량 생산업무에 종사하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과 달리 피고 소속 근로자들은 남양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서 연구·개발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그 근무장소와 업무내용을 달리하고 있었음에도 위와 같은 근거로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판단의 근거들을 살펴보면 첫째 피고가 정한 생산계획에 따라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원청사업장 내에서 행해지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은 대부분 원청이 정한 생산계획에 따라 원청의 생산시설과 그 시스템 아래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다수 사내협력업체 근로가 파견근로에 해당할 근거 하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원청업체(근로자)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작업방법을 변경하거나 그 작업내용을 통지하는 것 역시도 도급계약을 체결하고서 하는 경우라도 흔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청업체(근로자) 업무와 사내협력업체의 것이 밀접한 연관을 갖고 행해지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작업수행을 검증하는 일 등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것들 때문에 원청업체는 도급계약을 통해서 사내협력업체(근로자)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만약 이와 같이 할 수가 없는 것이라면 굳이 사내협력업체(근로자)를 활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경우 원청업체의 사업(업무)를 위해서 사내협력업체(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인데,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도급계약을 체결하고서 사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번 판결은 정규직(연구원)과 혼재하지 않고 그 종사업무를 달리하고 있을지라도 사내협력업체 근로는 파견근로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유사한 형태로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를 사용해 온 자동차·전자·철강 같은 제조업 사업장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 사내협력업체 근로도 파견근로에 해당할 수가 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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