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징계받기를 즐겨하는 공무원이 있으랴만 우정직 공무원인 집배원은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특히나 징계를 두려워한다.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징계를 받기만 하면 무조건 다른 지역 우체국으로 전보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역의 지리와 주소, 주소지별 거주자의 특수한 사정 등 우편물 배달에 필요한 정보와 경험을 쌓는 데 최소 6개월 이상이 소요되는데 ‘집배원 노동조건 기획추진단’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은 통상 평일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서 오후 6시50분에 퇴근할 때까지 하루 평균 980통의 우편물을 배달한다니, 그 6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우편물 1통에 10초씩만 배달 시간이 늘어난다고 가정하더라도 날마다 2시간43분을 더 근무해야 한다. 지옥 같은 시절을 겪게 되는 것이다. (집배원들이 이미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음을 기억하자.)

이처럼 징계처분에 수반하는 필요적 전보처분은 우정사업본부 훈령인 우정사업본부 소속공무원 인사관리세칙 26조1항 “징계처분을 받은 공무원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소속기관(직할기관, 지방청 및 총괄국)을 달리해 전보해야 한다”는 규정에 근거한다. 우정직을 제외한 다른 공무원들의 인사규정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집배원들만이 정직이나 강등과 같은 중징계를 받든 견책이나 감봉과 같은 경징계를 받든 가리지 않고, 고의나 중과실로 중한 비위를 저질렀든 경과실로 가벼운 비위를 저질렀든 따지지 않고 다른 지역의 우체국으로 쫓겨난다.

집배원에게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정사업본부가 명확히 밝힌 적이 없으므로 부득이 추측하건대 징계처분을 더욱 두려워하도록 만들어 비위행위에 대한 위하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공무원들은? 국가기간망으로서 우편물 배달업무의 중요성이 결코 작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비위행위를 방지할 필요성이라면 우정사업본부보다는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훨씬 크게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경찰공무원 인사운영 규칙 50조는 금품수수·직무태만·음주운전 등의 비위를 저질러 감봉 이상의 징계를 받거나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에 ‘한해’ 대민업무에서 ‘가급적’ 배제하도록 정하고 있을 뿐 징계처분에 수반한 필요적 전보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무릇 위하력의 강화는 징계제도 자체에 내재된 징계양정으로써 충분히 달성될 수 있고 실제로 달성되고 있다. 고의로 중한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는 파면·해임·강등 등의 중징계를 하도록 돼 있으므로 거기에 전보라는 불이익을 더하더라도 위하력이 크게 개선될 리 없고, 과실로 가벼운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은 애초에 고의로 한 것이 아니므로 추가적인 전보로 인한 위하력이 의미 있게 작동하기 어렵다. 오히려 가벼운 징계를 받더라도 무조건 전보되는 탓에 우체국 현장에서는 전보에 따른 인력 공백 및 대상자가 겪게 될 혹독한 고통을 우려해 어지간한 비위는 서로 모른 척 눈감아 주는 부작용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강원도 원주 소재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집배원이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고 171킬로미터 떨어진 고성시 소재 우체국으로 전보되자 감봉처분과 전보처분의 각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춘천지법은 그 사건에서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 징계령 등 관계법령 어디에도 징계처분에 부수해 필요적으로 이뤄지는 전보에 관련된 규정이 없고 어떠한 법령도 인사관리세칙에서 전보사유를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하지 않았으므로 우정사업본부 소속공무원 인사관리세칙 26조1항은 상위법령의 위임 없이 마련된 행정부의 내부지침에 불과하고, 따라서 전보의 정당성에 관한 판례 법리로 돌아가 판단하건대 원고를 전보해야 할 업무상 필요성이 그로 인해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전보처분을 취소했다.

집배원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판결이었고, 공무원이라도 일반 국민과 같은 기본권 주체로서 또 한 번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우정사업본부측이 항소했으므로 상급심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그 집배원이 소속한 노동조합인 집배노조는 조합원들이 징계보다 그에 수반하는 전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체국 내부의 부조리에 맞서거나 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웠다면서, 설령 이번 소송에서 패소할지라도 문제의 규정이 폐지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최소한 남들만큼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집배원들의 건투를 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