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새벽 끼임 사고 현장.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현대중공업에서 닷새 동안 두 명의 노동자가 끼임사고로 중태에 빠지거나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두 달 전 물량팀 노동자가 작업 중 추락사한 지 얼마 안 돼 중대사고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감독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고가 났을 때만 반짝 점검에 그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노동부는 올해 건설업 추락과 제조업 끼임사고를 중점적으로 감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원·하청을 가리지 않는 노동자 죽음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도장공장 빅도어에 끼인 노동자 사망

21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8분께 조선사업부 선행도장부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정아무개(50)씨가 도장공장 빅도어(대형 출입문) 사이에 끼여 숨졌다. 정씨는 두개골 파열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빅도어는 각종 선박 블록이 오가는 대형 출입문으로 사람이 손으로 스위치를 눌렀을 때만 작동한다. 현대중공업은 과거 빅도어 사고가 잦아 수동으로 버튼을 눌러야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는데, 또 사고가 난 발생한 것이다. 정씨는 현대중공업 정규직으로, 블록 입·출고 업무를 맡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중공업측은 정씨가 버튼을 누른 뒤 빅도어가 제대로 열리지 않자 직접 문 사이를 살펴보다 갑자기 문이 움직이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닷새 전인 지난 16일 오후 6시12분께에는 특수선 961호선 선수에서 어뢰발사관 덮개 유격조정을 하던 김아무개(45)씨가 어뢰발사관 덮개와 선체 유압도어 사이에 머리와 경추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날 현재까지 의식불명 상태다.

지부 관계자는 “김씨는 해당 공정 숙련자가 아니다”며 “사고 당일 급하게 검사일정이 잡히면서 연장노동을 지원받는 과정에서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산일정을 맞추기 위해 예정에 없던 일정을 잡다 보니, 작업지시서나 안전작업표준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관리자, 작업지시서·표준작업지도서 조작하다 들통

해당 사고가 일어난 뒤 관리자들이 작업지시서와 표준작업지도서를 허위로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부는 이날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사고 전후 안전작업 계획서·작업지시서, 원본과 달라진 제출 표준작업지도서·유해위험평가서를 공개했다. 작업 전에는 작성하지 않았던 작업지시서에 사고 작업 내용과 작업자 서명을 허위로 기재하고, 표준작업지도서에는 원본에 쓰지 않았던 ‘도어 설치 작업시 유압으로 인한 끼임 사고 위험’을 추가했다는 내용이다.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고 작업자에게 알렸다”는 식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해 핵심 증거자료들을 조작했다고 지부는 설명했다. 해당 서류는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던 원본을 현장 노동자들이 발견해 지부에 제보하면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2월에도 울산공장 2야드 풍력발전소 부근 LNG선 트러스(LNG선 탱크 내 작업용 발판 구조물) 작업장에서 일하던 물량팀 노동자 김아무개(62)씨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부 관계자는 “12건의 중대재해가 연이어 발생한 2016년의 악몽이 떠오른다”며 “중대재해가 한 번 일어나기 시작하면 연이어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비상상황인 만큼 회사와 긴밀하게 논의해 안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부는 사고조사 결과에 따라 법 위반 사항에 대해 형사고발할 방침이다.

현대중공업은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고, 관계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해 사고 원인 규명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안전시설 투자 없이 공정압박만 가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생산만능주의와 노동부의 수박 겉핥기식 감독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이날 “노동자가 죽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노동부, 노동자가 죽어도 부실하고 형식적인 감독에만 급급한 노동부가 현대중공업 중대재해의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에 전체 작업장 작업중지를 명령하고 안전보건진단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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