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1. “핵심은 일자리를 지켜 내는 것이다. 고용유지를 위해 기업과 노동자를 돕고,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 “정부는 노사합의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0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금의 경제상황을 1920~30년대의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침체로 진단하고, 한국이 올해 마이너스 1.2% 성장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성장률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한 것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국민의 삶이 무너진다면 성장률 1위가 된다 해도 결코 위안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선 일자리, 고용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20년 전 외환위기 직후 기업 구조조정에 따라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일자리를 잃었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1997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 나라에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보장해 달라” “고용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당시 많은 노조가 고용을 유지하는 노사합의인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요구했지만, 그 교섭과 파업은 불법과 범죄로 규정돼 결국은 국가권력에 의해 진압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8년 9월 만도기계였다. 헬기와 중장비·최루탄까지 동원한 경찰에 무자비하게 진압됐다. 전국 6개 공장에서 파업 농성 중이던 조합원 2천400여명을 체포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 내야 한다며 정부는 노사합의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이라 하고 있으니 20년 동안 나라가 달라지긴 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노동자부터 생각해 주는 대통령의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감개무량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집권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이 180석을 차지한 21대 총선의 승리로 자신감을 가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드디어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인가. 위기가 기회라더니, 코로나19 사태로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오게 되는 것인가. 갖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배회하고 있으니 도대체가 생각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2.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7년 7월, 국회에서 하이디스 정리해고 사건 관련 국회토론회가 있었다. 관련해서 내가 했던 일들을 PC 문서파일에서 들춰 보다가 찾게 됐다. 당시는 2017년 5월 치러진 촛불대선에서 ‘노동존중 사회’ 공약을 실현할 의지가 높던 때였다. 마침 그해 6월 수원지방법원에서 하이디스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1심 판결이 선고된 직후에 열렸던 토론회라서 그 소송을 대리하던 나도 한껏 기세가 높았다. 토론회 발제문을 찾아서 읽어 보니 정말 기세가 대단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그 근로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노동자측 사유로 그 계약의 해지, 즉 해고하는 것 말고 사용자측 사정을 내세워 계약을 해지하려면 계약 불이행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과 판례는 사용자의 경영사정을 이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정리해고를 허용해 왔다. 정리해고에서 노동자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경영을 잘못한 사용자의 죄 말고는 없다. 정리해고 제도는 사용자의 죄에 대한 부담을 노동자가 떠안도록 한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해 보자. 정리해고는 ‘사용자가 좀 더 잘 살겠다’고 노동자를 죽이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생각해 본다. 정리해고제도란 노동자를 죽여 사용자를 살리겠다는 제도라고 다시 토론해도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니 대단한 말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심각한 것은, 이 나라에선 이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에 관해서 법원이 “파산, 도산 등 정리해고하지 않으면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운 정도의 경영사정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파악하지 않고, 단지 인원감축할 객관적인 합리성이 인정되는 정도의 경영상 사정이 있으면 족하다는 식으로 ‘너 죽고 나 더 잘 살자’는 사용자편에서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법을 집행해 왔다”고 법원 판례를 나는 비판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그런 법원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규정을 내세워 하이디스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주장에서 법원의 판결을 받아냈어도, 그것은 하이디스 사건에서만 그러했던 것일 뿐이고 그것으로 나머지 대다수 사업장에서 행해지는 정리해고를 막지 못한다.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과 그 법원의 판례가 노동자를 정리해고로 내몰고 있으니 오늘도 사용자들은 경영사정이 어려우면 구조조정 운운하며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내쫓을 궁리부터 하는 것이다. 정리해고하는 법을 두고서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인원감축할 객관적인 합리성이 인정되는 정도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법과 판례를 그대로 둔 채,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 내겠다고 하는 대통령의 말을 쉽게 믿기 어렵다.

3. 촛불대선 당시에 중앙선관위 등록 10대 공약 및 선거공약서,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발간 19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나라를 나라답게’를 포함해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찾아 봤다. 정리해고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부당한 찍퇴·강퇴를 막는 희망퇴직 남용방지법을 제정”해서 “정년까지 보장받는 5060 신중년 일자리”공약이 선거공약에 포함돼 있을 뿐이다. 희망퇴직·명예퇴직 등은 정리해고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노동자 퇴출의 수단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설사 공약대로 희망퇴직 남용을 방지하게 되더라도 지금처럼 정리해고가 허용돼서는 노동자에게 고용유지는 없다. 정년까지 보장받는 안정된 일자리는 어렵다. 이에 대해 이번 21대 총선에서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한국노총과 합의한 공동협약을 읽어보니 정리해고 요건 강화가 포함돼 있다. 이 협약에서 “정리해고는 기업유지가 어려운 경우로 한정하고, 정리해고시에는 해고회피 노력과 이후 정리해고자 재고용 우선을 의무화”하겠다고 집권여당은 약속하고 있다. 여기서 해고회피 노력과 정리해고자 재고용 우선 의무화 부분은 현재 근로기준법에도 규정돼 있는 것이라서 그 법규정을 정리해고를 제한하는 것으로 더욱 엄격히 하겠다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기업유지가 어려운 경우”에 한해서만 정리해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부분은 현재 정리해고법보다는 노동자의 고용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에 일자리를 지켜 내 노동자의 고용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한 총선의 약속은 현행 정리해고하는 법을 개정해서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쉽게 할 수 없도록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코로나19 사태 이후까지도 노동자의 고용유지에 도움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약속이라도 그대로 이행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국회의석 180석을 확보한 것이니 기대하고 싶다.

4. 마지막으로 우리 노동자들이 헷갈릴까 한 가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사태와 21대 총선을 거치면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에 지급할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이라 붙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류의 재난기본소득과는 달리, 더불어시민당을 포함해 일부 정당은 총선 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이러니 갑자기 이 나라에선 기본소득이 관심이 돼 버린 듯하다. 그것이 지급되면 뭔가 해결이라도 되는 양 대단하게 말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에 처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긴급 지원금에 불과한 것이고, 나아가 그야말로 매월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이라고 해도 그것이 이 세상에서 일자리를 지켜 내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하지 못함은 분명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미국은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천200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미국에선 지난주까지만도 벌써 약 2천200만명이 실업급여를 청구했다. 여기에 불법체류자 등 이것조차 청구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그만큼 사용자 경영사정으로 노동자가 쉽게 해고된다고 알 수 있는 것이다. 4인 가족에 100만원을 지급한다는 우리의 경우보다 월등히 많은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이 일자리를 지켜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기본소득이 노동자에게 무슨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최저임금 제도가 존재해도 임금인상을 위해 노조활동이 필요한 것처럼, 고용유지를 위해서는 노동자에겐 사용자가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지 않는 법이 있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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