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대응책 중 하나로 제기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결정했고, 일부에서는 이미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중앙정부의 재난기본소득 논의도 활발하다. 정부에서 처음 제기한 소득 하위 70% 선별지급 방안에 불만과 논란이 이어지면서 전 국민에게 동일하게 지급하자는 주장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편 지급과 (고소득층) 선별 환수”를 주장하는 등 지급 대상·방식에 대한 논의도 매우 다양하고 활발하다.

신기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으레 있을 법한 포퓰리즘 논란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보수 야권의 한 인사가 잠깐 제기한 적이 있었으나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며칠 전 한 인터넷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58.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대부분의 국민이 직접 체감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총선 국면이라 여야 할 것 없이 국민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상당수 국민이 찬성하고 있는 보편 지급 방안에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스페인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인간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이상을 구체적으로 달성하고 보장해 줄 것”이라며 강력한 지지를 표했다고 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은 재난시에 일시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이고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원래 기본소득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향후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며칠 전 집권여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한 후보가 모든 국민에게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법을 1호 법안으로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와중에 일부 지자체에서 재난기본소득을 모든 주민에게 지급하면서 결혼이민자 같은 이주민을 배제해 논란을 빚고 있다. 경기도는 아예 이주민을 배제했다. 서울시의 경우 한국인 배우자가 있거나 한국인 자녀를 양육하는 등 한국 국적자와 가족 관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경기도 관계자는 “긴급하게 지급하기 위해 주민등록 전산상으로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전산상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당장 지급이 어렵다면 가능한 방안을 검토해서 추후 지급하면 될 것이다. 전북 익산시는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결혼이민자에게도 지역주민과 동일하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재난기본소득은 재난 상황에서 위축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경제정책이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크게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같은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복지정책이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대부분 이주민은 이런 취약계층에 속할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재난기본소득을 반드시 받아야 할 주민들이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세금을 내면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심지어 평상시 선별 복지를 주장하는 야권의 목소리에 집중하던 보수언론에서조차 이주민들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서울시와 경기도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이후의 세상은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꽤 다를 거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상당히 큰 고통이 따를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도 고용불안과 실업 쓰나미가 밀어닥칠 것이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 사회가 이 고통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심히 걱정스럽다. 그나마 최근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공공의료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할 때 소득손실을 보전해 주는 상병수당 도입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포함해 사회안전망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일부 지자체가 재난기본소득 지급 대상에서 이주민을 배제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이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차별과 배제 없는 재난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