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선 변호사(민변 여성위 여성노동팀장)

헌법 32조4항 전단은 ‘여성 노동의 특별한 보호’를, 헌법 36조2항은 ‘국가의 모성 보호를 위한 노력’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70조(야간근로와 휴일근로의 제한)2항은 “사용자는 임산부와 18세 미만자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에 근로시키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법 65조(사용 금지)1항은 “사용자는 임신 중이거나 산후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여성과 18세 미만자를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한다”이고, 2항은 “사용자는 임산부가 아닌 18세 이상의 여성을 1항에 따른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 중 임신 또는 출산에 관한 기능에 유해·위험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산부와 18세 이상 여성에 대한 이 같은 노동기준은 임신 상태의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모체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태아가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한 의도, 즉 가임기 여성 또는 임신한 여성의 야간근로·휴일근로,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에서의 근로가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은 2002~2003년 입사 후 2009년께 임신해 2010년께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2009년과 2010년에 임신한 간호사 27명 중 9명이 유산했고 18명이 출산했는데, 이 중 4명이 위 간호사들이다. 2009년 대한민국 유산율은 20.3%, 제주도 유산율은 20.6%다. 그런데 제주의료원 유산율은 무려 2009년 40%, 2010년 38.5%였다.

4명의 간호사들은 평균 300~500정의 약품을 분쇄하는 업무 과정에서 약품을 흡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약품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부투여안정성 등급 X등급(임부에게 투여 금지)으로 분류된 17종, D등급(태아에 대한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증거가 있음) 판정을 받은 37종이었다. 임산부가 복용하면 선천성 심장 기형 위험이 증가하는 것들이었다.

간호사들은 오물처리작업, 욕창환자 드레싱과 용품 소독, 박스 나르기, 서서 일하기, 쪼그려 작업하기, 불규칙한 업무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상 이유로 항상 간호사가 부족했고, 간호사 1인당 40여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했다.

1심 법원은 간호사들의 업무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태아의 건강손상은 엄마의 건강손상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했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며 “출산으로 모체와 태아의 인격이 분리된다는 사정만으로 그전까지 업무상재해였던 것이 이제는 업무상재해가 아닌 것으로 변모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실제로 어떻게 얼마나 산재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정책적으로 풀 문제로 봤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하위법령 개정을 통해 명확히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입법자가 이를 게을리하는 경우 “법원이 법률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형성’을 해 나름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해법을 도출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실무상 어려움을 이유로 산재 불인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2심 법원은 “산재보험급여 수급권자는 본인으로 한정되며 출산한 자녀를 이유로 여성근로자가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29일 이 사건에 대해 선고한다. 간호사들의 업무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것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은 이견이 없는 듯하다. 산재보험제도의 목적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동일한 업무환경에서 집단적으로 ‘유산’ 피해를 입은 간호사들과 ‘2세의 선천성 심장질환’ 피해를 입은 원고들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해서는 안 된다. 남은 것은 법을 실질과 목적에 부합하게 해석·적용하느냐, 형식적으로 적용하느냐의 문제다.

업무로 인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간호사들이 10년 넘게 대법원 판결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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