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현경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기대 가득했던 2020년이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로 잠시 멈춤 상태다. 금방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바이러스는 긴 시간 동안 우리 주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의 멈춤도 길게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감염되지는 않을까’ 혹은 ‘내가 누군가를 감염시키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마스크를 쓰고 손세정제도 가지고 다닌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동참하고 있다.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에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정부는 감염병 위기경보 4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심각’ 단계를 발표하고 대응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매일 포털사이트나 뉴스를 통해 현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심각성을 주지시키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매일 알람을 보고 들으면서 경각심을 갖게 됐다. 간혹 배려 없는 행동을 한 사람들을 비난하며 서로를 지켜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확진자가 다녀간 곳은 방역을 철저히 하고 다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방수칙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정부의 이런 ‘알람’이 경각심을 갖게 해 준 덕분인지, 바이러스 확산은 주춤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임을 주지하기 위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고 있는 상황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산업재해사망 위기경보 단계는 수십 년간 ‘심각’ 단계였다. 아마 심각 단계보다 더 높은 단계가 있다면, 그 단계에 해당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3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질병으로 사망하는 노동자 숫자까지 합하면 하루 평균 5~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다. 이것도 산재로 승인된 숫자만 포함한 것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노동자가 숨지고 있을 것이다.

실제 지난해 노동건강연대가 2018년 산재 사망사고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을 했는데 사망사고 중 66.2%는 보도되지 않고 잊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분석작업에 참여하면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을 노동자의 죽음이 조용히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 기업들은 거의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노동건강연대는 분석 작업 이후 ‘노동자의 조용한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책임을 묻기 위한 작은 걸음’이 되기 위해 매달 ‘이달의 기업살인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비록 보도된 내용은 대부분 길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을 모아 어떤 현장에서 어떤 작업을 하다가 사망하게 됐는지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서 반복되는 사망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심각’한 단계임을 알리기 위해 알람 역할을 하면서 매달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이 시작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1월에는 44명(2월에 확인된 2명 포함), 2월에는 57명(3월에 확인된 2명 포함), 3월에는 58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다. 3월까지 159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다만 발표 자료에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포함돼 있다. 사고로 사망한 사건만 반영하고 있다. 때문에 보도되지 못한 사망사고, 질병으로 인한 사망까지 감안하면 실제 산재로 인한 노동자 사망은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점은 사고 유형이 반복되고 있고, 그 유형은 떨어짐·끼임·부딪힘이라는 것이다.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만 취했어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환경이 안전하지 않은 ‘심각’ 단계임을 다시 한 번 인지하고, 노동자와 기업에 지속적으로 주지시켜야 한다. 일터에서 동일·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산재를 발생시킨 기업과 그 대표자를 강도 높게 처벌해 반드시 그 죽음에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지금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대응 역량을 총동원하듯이, 산재예방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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