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2월부터 수입이 전혀 없어요. 앞으로 두어 달도 없을 것 같아요. 생계가 막막해서 대출을 받으려 해도 사업자등록증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하네요. 실업급여나 휴업수당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 초등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치는 방과후 강사라고 밝힌 A씨가 코로나19 사태로 “생계가 막막하다”며 증언한 내용이다. A씨는 “대출은 안 된다고 하고, 고용·생활안정지원금은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서 받을 수 없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정부 지원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역고용대응 특별지원사업 같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목소리다.

민주노총 특수고용 노동자 대책회의는 13일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고용보험법 개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현재 겪고 있는 생계위협 상황을 증언했다.

“계약서 안 써서 지원대책 서류도 못 내”

“연극배우들은 힘들지 않았던 때가 없었기에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힘들어 봤자 거기서 거기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공연이 기약 없이 연기·취소돼 가뜩이나 힘든데 더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이날 연극배우 이종승씨는 “연극배우들은 몇 달 동안 수입이 없어 가계가 마이너스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예술인이 받을 수 있는 지원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시행하는 생활안정자금 융자제도가 있지만 빚으로 빚을 메꾸는 대책일 뿐이고 그마저도 예술인 증명을 한 사람만 받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방송작가는 기존 프로그램이 잠정 중단되거나 조기 종영돼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적지 않다. 방송 프로그램 다수가 코로나19 대응체제로 긴급 전환되면서다. 방송작가 B씨는 “운 좋게 일자리가 생겨도 제작사들은 임금을 깎거나 업무 강도를 높이며 ‘요즘 일자리 구하는 사람이 많으니 제작사는 아쉬울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B씨도 “정부가 내놓은 고용·생활안정지원금이 현실성 없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원사업에 신청하려면 근로이력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 다수의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방송작가를 사용하고 있어 신청 서류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씨는 “특수고용 노동자인 방송작가는 가족돌봄비용 긴급지원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5인승 영업용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 C씨는 “코로나19로 유치원·학원 버스 운행을 안 한 지 한 달이 넘어 차량·보험료 할부금, 지입료, 차량 수리비를 비롯한 차량 관리비용으로 빚이 늘어나고 있다”며 “생계는 고사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금방 파산하고 빚더미에 앉을 판”이라고 한숨 쉬었다.

학습지 교사 D씨는 “코로나19로 임금이 반토막 났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금을 준다고 선전하는데 학습지교사가 실제 받을 수 있는 지원 기준을 마련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고용 노동자라 4대 보험이나 상여금·퇴직금은 꿈도 꾸지 못하고, 월 소득 200만원도 못 받는데 건강보험료 기준상 고용·생활안정지원금 대상도 안 된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용보험법·노조법 개정안 20대 국회에서 통과해야”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과 함께 특수고용 노동자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보험법 개정으로 고용보험 가입조건을 완화해 특수고용 노동자가 고용보험에 의무가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용보험법상 특수고용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고용보험료를 100% 부담해야 하고, 노동자와 달리 의무가입 대상도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부터 고용보험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아직도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종승씨는 “지금까지 요구해 왔던 고용보험법만 국회를 통과했어도 숨통은 트였을 것”이라며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해당 법들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조법 2조 개정으로 노조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라고 요구했다. 2017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노조법 2조에서 ‘근로자’ 범위를 “계약형식과 관계없이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로 개념을 넓혔다.

이영철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의장은 “정부와 국회가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해 노조할 권리를 보장했다면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사측과 노동자 건강권·생존권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여당과 거대 야당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국회를 마무리하려 하는데,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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