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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위성정당 꼬라지나 보려고 민주주의를 부른 것이 아닌데
▲ 한석호 노동운동가

황당하다. 그냥 그러려니 곱게 봐주려고 해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한때 그들은 동지였다. 빛고을 광주를 총칼로 진압하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파쇼정권에 맞서 함께 스크럼을 짰고 화염병을 들었다. 우리는 전태일을 심장에 품고 평등사회를 만들 때까지 변치 말자고 맹세했다. 그런 동지들이 있어 참으로 든든했다. 그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를 흘리고 수배되고 감옥 가고 고문도 당했다.

그 동지들이 있고 그 약속들을 믿었기에, 휴우, 우리의 그 동지들은 열사가 돼 떠났다.

한희철·우종원·김성수·박종철·이한열·김세진·이재호·박래전…. 이름을 다 나열하자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을 끝내야 할 만큼 숱한 동지가 떠났다. 어떤 동지는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고, 어떤 동지는 할복했고, 어떤 동지는 캠퍼스 건물에서 떨어졌다. 어떤 동지는 강제징집으로 죽었고, 어떤 동지는 고문으로 죽었고, 어떤 동지는 맞아 죽었다. 죽었고, 죽었고, 죽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부르면서 그렇게 죽어 갔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 죽음들 앞에서 다시 또 맹세하고 맹세했다. 민주주의와 평등사회, 그이들이 못다 이룬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역사 앞에 약속했다.

그랬는데, 그 열사들이 믿었던, 그래서 먼저 떠날 수 있었던 열사들의 그 동지들이, 민주를 걸고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위성정당, 아니 괴뢰정당. 열사들의 죽음 앞에서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꼴이다. 학교 앞과 공단 앞의 허름한 술집에서 막걸릿잔 기울이며 새 세상 건설을 다짐하고 약속했던 한때의 그 동지들. 그들이 맹세를 배신하고 자신의 부와 권력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를 우롱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열사들이 그리 떠날 수 있었을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20대에 80년대 대학을 다닌 60년대생이라는 286은 시간 흐름에 따라 386과 486을 거쳐 586이 됐다. 나는 이른바 586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표현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누군가 나를 그렇게 지칭하는 것이 무척 싫었다. 나에게 그 표현은 개인의 권력과 부를 좇아 떠나 버린 옛 학생운동권을 향한 표현일 따름이었다.

처음에는 실제 그렇게 한정해서 사용했다. 민주당에 들어간 학생운동 출신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대 전반을 아우르는 표현이 됐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이제는 받아들인다. 부동산 투기와 학력 사재기와 빈부격차 심화 따위로 자식 세대까지 갉아먹으면서 사회 곳곳에서 자행하고 있는 86세대의 후안무치도 결국은 같은 세대로서 함께 짊어져야 할 과오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 인간의 하나인지라 마음이 복잡하다. 생각이 엉뚱하게 흘러 그때 왜 그랬냐며 나 자신을 질타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딸이 있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딸이다. 딸은 어릴 때부터 영문도 모른 채 또래 친구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 빈한하게 사회운동하는 엄마와 아빠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이었다. 수학학원 좀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망친다는 판단이었다.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이 심어 준 소신이었다. 딸은 뾰로통해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 뒤로도 간간이 졸랐다. 다른 친구들은 전 과목 학원을 다닌다거나 국·영·수는 다닌다면서 울며 졸랐다. 안쓰러웠고 소신이 꺾였다. 보내겠다고 하면서 학원비를 물었다. 23만원이라 했다.

나는 기겁했다. 당시 내가 받던 활동비 160만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네 식구 생활비로도 늘 모자라는 상황이라 여기저기 손 벌리며 살던 상황이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화장실에서 남몰래 입 틀어막고 흐느끼기도 하던 때였다.

나는 딸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했다. 딸은 1년 동안 시험 때마다 속상해했다. 그러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주변 도움으로 딸은 공부동냥에 의지했고, 원하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시리다. 죽는 순간에 그때가 떠오른다면 나는 아마 딸에게 미안해서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나도 내 세대 다른 사람들처럼 부와 권력의 유혹에 눈 질끈 감고 모르는 척 따라갔으면, 열사들 앞의 맹세를 슬쩍 내려놓았으면…. 내 삶을 스스로 부정할 수도 있는 참 구차한 얘기다. 젠장. 언뜻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런 생각까지 했던 내가 밉다.

그럼에도 나는 휘청휘청 힘겨운 걸음일지언정 열사들 앞의 약속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세상 떠나 그들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더구나 노동운동의 길에서 또 맹세한 열사들이 있다. 박창수·배달호·김주익·이수원….

열사들이 먼저 떠난 것은 고작 위성정당 꼬라지 보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부르고 평등사회를 외친 것은 괴뢰정당 꼬라지 보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끝내 열사들의 죽음을 배신하고 우롱하더라도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던 그때의 그 마음과 결의로 다시 또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비록 지금 우롱당하더라도 역사가 있다. 대한민국 역사는 사사오입에 이어 위성정당을 부끄러운 정치사로 기록할 것이다. 그때 누가 그 짓을 벌였고 누가 거기에 동조했는지 기록할 것이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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