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베네치아에서는 2박3일을 머물게 계획을 짰다.

하룻밤 자고 떠나려면 사실 도착한 날 오후와 밤에 베네치아를 보는 게 전부가 되는 셈이라 찍고 떠나는 패키지여행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전체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주요 관광지의 체크아웃 시간이 오전 10~11시 사이가 대부분이었다. 12시라도 되면 바쁘게 움직여 뭐라도 보고 올 텐데, 그렇지가 않으니 시간이 애매했다.

첫날, 리알토 다리 주변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던 나는 둘째 날은 베네치아 본섬을 구석구석 돌아다니기로 마음먹고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리알토 다리 근처의 시장을 보는 것에서 시작해 산마르코 광장과 성당, 종탑과 주변 건물들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성당 앞 광장 길을 지나 수상버스와 곤돌라들이 정착하고 있는 해변쪽으로 나아가려는데 경찰 두 명이 길을 막아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을 한쪽 갓길로 안내했다. 내가 가려던 쪽에서는 경찰들이 무슨 범죄현장 보존이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줄을 치고 있었다. 언뜻 봐서는 별게 없어 보였다. 자동차나 사람, 자전거가 부딪혀서 사고가 난 것도 아니었다. 소란스러운 느낌도 전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관광객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정사각형으로 넓게 빈 광장 한가운데에 백팩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순간 모든 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된 모양이구나!’

그 누구도 설명하지 않고, 설명을 듣지도 않았지만 그 상황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이해한 듯했다. 그렇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동요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이내 중무장한 경찰 몇이 더 투입돼 주변 경계를 강화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은 이 장면 역시 기념할 거리라는 듯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로 옆 노천카페에 자리를 튼 사람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할 리 없는 가족들이 함께하고 있던 터라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쪽부터 돌아보기로 하고 광장을 떠났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다시 광장을 찾았을 땐 경찰이 친 줄도, 백팩도 사라진 채였다. 그 자리는 깃발을 흔드는 가이드와 그를 쫓는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어느새 이런 장면들이 심심치 않은 일이 돼 버린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이제는 호들갑조차 떨지 않을 정도로 테러나 테러로 의심되는 상황들이 흔한 일상의 모습이 돼 버렸다는 얘기다. 이탈리아의 유명 관광지 어느 곳을 가도 중무장한 경찰과 장갑차 수준의 경찰차가 항상 대기 중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저 이곳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 중 하나였다. 아마 이탈리아만의 모습이 아니라 유럽 주요 도시 전체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라, 1년에도 몇 번씩 무언가가 실제로 터지는 상황이다. 그러니 유럽인들에게 테러는 이제 낯설지 않은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거니 싶었다. 슬프게도.

한 바퀴 돌아 다시 찾은 광장에서 꽤 유명한 카페 한 곳에 들러 차를 마셨다. 입구는 작아 보였지만 안쪽으로 방이 몇 개씩 있어 꽤나 많은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우리는 한쪽 구석에 있는 방으로 안내됐다. 그런데 여기서 분위기가 좀 묘해졌다. 방에는 6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우리를 포함해 4개 테이블이 모두 동양인이었다. 워낙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섞이는 곳이라 이런 장면은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뒤로 들어온 한 팀 역시 동양인이었다. 딸아이가 이 상황을 보고 이게 리뷰로만 봤던 이탈리아 식당이나 카페의 은근한 자리 배치 인종차별일 수도 있다고 알려 준다. 그러니까 아시아 사람들을 다른 서양 손님들과 ‘격리’를 시키는 인종차별이라는 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6번째 테이블은 아시아인이 아니어서 확증을 하지는 못했지만 기분은 못내 찜찜했다. 이 카페는 늘 북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럴 의도가 전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여러 식당들에서 이런 식으로 인종차별을 한다는 얘기들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얘기였다. 노골적인 식당은 다른 자리들이 다 비어 있는데도 유독 아시아인들만 한쪽으로 몰고 항의를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이런 식의 대접이 별일 아닌,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는 지도 몰랐다.

차별과 테러!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패키지 상품이 이렇게 발 디딜 틈도 없이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치는 도시의 일상에 파고들어 터를 잡고 있다는 건 분명 위태로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나만은 당하지 않도록 피해 다니는 것 외에는 뜨내기 신세인 여행자에게 별다른 해결책도 없는 일이라는 게 그저 서글플 뿐이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고, 대문 밖이 저승길이라는 말이 진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여행을 끊지 못하는 건 또 무슨 조화인지.

여행작가 (ecocjh@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