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9.27 일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연재칼럼 비정규직 활동가의 차별없는 세상 속으로
청년노동자 김태규는 왜 죽어야 했나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지난해 4월10일 스물네 살 청년노동자가 수원의 한 건설현장 5층 높이의 화물용 승강기에서 떨어져 숨졌다. 늘 그렇듯이 시공사는 ‘단순실족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화물용 승강기는 승인 신고가 돼 있지 않고 불법운행 중이었다.

누가 그 승강기를 운행하도록 했는가. 이 청년노동자는 승강기의 뒷문으로 떨어졌다. 그 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면 추락은 가능하지 않다. 누가 그 문을 열어 둔 채로 작업하도록 지시했는가. 고인은 운동화를 신은 채 일했다. 도대체 안전화조차 지급하지 않고 일하도록 한 것은 누구인가. 용역업체를 통해 일용직으로 일한 지 3일째, 안전장비도 없고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던 청년노동자 김태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이 죽음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밝혀야 하고, 그들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이런 죽음이 또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바로 다음날 고용노동부가 현장조사를 하던 그 시간에 김태규가 탔던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옮겨져 있었다. 사고현장이 훼손된 것이다. 그 엘리베이터를 옮긴 것은 시공사인 은하종합건설이었다. 그들은 형사에게 구두로 허락을 받고, 1층으로 옮기는 것이 보기 좋아 옮겼다고 했다. 사고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상식조차 지키지 않은 조치였다. 초동수사 단계부터 이렇게 허술했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제대로 진상이 밝혀지리라고 믿기 어려웠다. 예상했던 대로 경찰은 조사를 부실하게 했고 노동부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경찰에 재조사를 요구했다. 그 결과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재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공사인 은하종합건설 대표를 포함한 6명에 대해 기소의견을 올린다. 그런데 2019년 12월 검찰은 은하종합건설 법인 대표와 관리책임이 명백한 발주처 ㈜에이씨엔의 책임에 대해 모두 무혐의 불기소로 결론을 내렸다. 현장관리 책임자 일부와 건설사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경찰이 재수사하면서 낸 의견을 모두 묵살하고 부실했던 초동수사보다 못한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우리는 질문한다. 도대체 건설노동자 김태규는 왜 죽은 것인가. 도대체 누가 이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인가.

실은 이 죽음의 원인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죽는지 모두가 잘 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죽고 너무 많이 다치니 이제는 당연하게 여길 뿐이다. 노동자에게 안전화와 안전모를 지급하는 것은 기업의 의무이지만, 일용직 노동자를 쓰니 회사는 안전화와 안전모가 아깝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안전모와 안전화 미지급이 관행이 된다. 승강기 문을 열고 작업을 하면 안 되지만, 공사기간 단축이 중요하니 노동자들이 알아서 조심하라고 강조한다. 위험한 현장은 내버려 둔 채,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만 안전을 강요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보다는 기업의 이윤이 더 중요한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그렇게 소모품처럼 쓰인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죽는다.

안전장비를 제대로 지급하고 안전을 위한 절차를 지키는 대신 “건설현장은 원래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시공사와 발주처가 범인이다. 건설현장의 위험을 알면서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도록 조치하지 않는 노동부가 범인이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단순 실족사”라는 시공사의 말만 듣고 처리하는 경찰이 이 죽음의 범인이다. 시공사와 발주처의 잘못이 확인돼도 “건설현장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불기소하고 불구속 기소하며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검찰과 법원이 범인이다.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기업을 제대로 처벌하는 법을 만들라고 외치는 산업재해피해 유가족들의 호소를 외면해 온 국회가 범인이다. 이들이 모두 청년노동자 김태규를 죽인 공범이다.

10일은 청년노동자 김태규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스물네 살 김태규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족이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으며, 책임감 있는 노동자였다. 꿈과 희망을 갖고 있던 청년이었다.

그는, 그리고 한 해 동안 죽어가는 2천400명은 이렇게 죽어도 되는 목숨이 아니다. 살아남은 유가족과 그의 친구들, 지금도 죽음의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죽어 간 목숨들을 대신해 외친다. “사람의 목숨은 이윤보다 소중하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요구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청기업과 최고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자.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아직 살아 있는 목숨을 살리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혜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