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기후국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사생결단으로 나서겠습니다. 예전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국회 내에서 그렇게 무서웠다고 하더군요. 사생결단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죽고 있으니까요. 지금 공항노동자를 비롯해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빠르게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같이 돌파해야 합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신사옥에서 고은영(35·사진)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를 만났다. 고은영 후보는 현재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3위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서울시장선거에 출마한 신지예 후보가 4위를 기록했다. 두 후보의 선전은 녹색당의 가능성을 각인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고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출마했다.

‘세월호 참사’ 6개월 만에 제주로 이주
“착취구조 탓 아이들 잃었다는 죄책감 때문”

- 정치를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정치를 먼저 안 것은 아니다. 제 삶을 먼저 전환시켰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뒤 6개월 만에 제주도로 이주했다. 서울이란 대도시 시스템, 신자유주의하에서 나도 착취당하고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거대한 구조에서 아이들이 죽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당시 경쟁사회에서 탈출구를 찾는 나 같은 청년들이 제주도로 많이 이주했다.”

고은영 후보는 서울에서 홍보대행사를 다니면서 삶이 피폐해졌다고 했다. 그는 “홍보·기획·광고 뒤에 ‘대행사’ 붙은 곳은 사람을 쥐어짜는 일자리”이라며 “지금도 콘텐츠 노동자들은 쥐어짜이며 일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며 대중적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좋았단다. 비영리단체로 직장을 옮긴 이유다. 그러던 중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곤 삶이 바뀌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이런 사회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비영리단체에서 몸담고 일한다고 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걸 세월호가 보여줬다고 봐요. 제주로 이주하면서 사람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 내 삶을 완성도 있게 변화하기 위한 발걸음이었죠.”

그러나 제주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에서의 삶과 비슷하더라고요. 그곳서도 직장생활을 했는데, 포괄임금제에 야근·주말근무까지. 월세는 서울 수준으로 비싸고. 왜 제주에서도 이런 삶에 시달려야 할까.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깨달았죠. 결국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제주살이 경험은 그를 평당원에서 열혈 녹색당 활동가로 변모시켰다.

“제가 사는 서귀포 솔오름에 오르면 영리병원 논란이 있었던 헬스케어 단지가 보입니다. 중산간을 밀고 리조트를 하면서 영리병원을 조금 추가하는 거죠. 더 내려가면 강정해군기지의 기다란 시설물이 보입니다. 이 광경을 보면 제주에서 벌어지는 개발로 사람과 생명이 쫓겨나고 저임금과 비싼 집값에 노동자도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굉장히 정의롭지 못하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녹색당 활동을 하게 됐어요.”

한국은 핵발전소 밀집된 ‘핵의 고리’ 국가
인간·생명 위한 정의로운 대전환 필요

- 2012년 창당한 녹색당은 생태주의만이 아니라 여성·청년·청소년·소수자 등 다양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한국 녹색당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핵사고에 늘 위협당하며 사는 삶을 탈피해야겠다고 여긴 시민들이 모여 만들었다. 한국은 핵발전소가 가장 밀집된 ‘핵의 고리’ 국가다. 탈핵은 단순히 핵발전을 벗어나야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노동자·시민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의 사회전환으로 연결된다. 핵발전으로 나오는 에너지를 줄이고 그 과정에서 산업전환이 일어나며, 노동자는 기본소득·평생교육을 받고 지역사회 연계로 빠르고 안전하게 일자리 전환이 이뤄진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자리를 만드는 정의로운 대전환을 의미한다. 녹색당은 2050년까지 이런 길을 제시하는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갖춘 유일한 정당이다.”

고 후보는 “녹색당을 백화점이라고도 한다”고 소개했다.

“(정의로운 대전환은) 여성·평화·인권 등과 다 연결돼 있다. 기후위기를 누가 촉발시키는가. 구태·구악 사회를 지탱하는 요소를 보면, 낡은 정치가 있고 여성돌봄 같은 공동체 착취가 있다. 건강한 남성이 대형공장 종사자가 되는 방식의 가부장제·가족구성으로 짜여 있다. 그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육제도와 대학문화, 도시·주거공간으로 또 짜여 있다. 이것을 정상사회·정상가족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밀집도시가 아닌 집중화 해체로 분권적 도시와 에너지, 그 안에서 여성·소수자 등 모든 구성원이 자기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고 사회주체로서 활동하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 녹색당은 ‘그린뉴딜’을 첫째 공약으로 내세웠다. 다른 진보개혁 정당들도 그린뉴딜을 공약에 담았는데, 차이점이 뭔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주장하는 그린뉴딜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회 대전환 정책을 말한다. 완전히 포괄적인 산업 대전환이 필요하다. 집권여당은 핵발전소 폐기를 말하면서 재원 마련 계획이 없다. 목표 없는 그린뉴딜은 의미 없다.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 기본법’을 제정해 국정목표로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총생산(GDP)의 3%(60조원 규모) 정도의 투자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 녹색당은 주 35시간 노동제 법제화·단계적 주 4일제, 채용성차별 처벌 강화·성별 임금격차 해소 등 많은 노동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녹색당은 노동정책이 약하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래된 노동이란 개념을 탈피해서 자신이 원할 때 노동하고, 고르게 가난하고, 지구에 위해하지 않는 삶을 사는 당원이 많다. 녹색당은 주 35시간제부터 여성노동까지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녹색당은 각 시·도에 결성된 지역녹색당의 연합체다. 각 지역에서도 노동현장과 활발히 연대사업을 하고 있다.”

▲ 정기훈 기자


녹색당 생태·여성·평화·인권·소수자 다양성 열린 공간

- 녹색당은 정치개혁연합이 제안한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추진으로 인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는 빛바래고 말았다.
“당초 선거연합에 참여하기로 당원투표로 결정했다. 더불어시민당은 누가 봐도 위성정당이다. 우리 당원은 선거연합을 하라고 투표한 거지 위성정당에 올라타라고 한 게 아니다. 이런 판단하에 우리는 독자노선으로 간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망한 당원들과 녹색당을 지지해 줬던 민주노총에 송구하다. 애초 덜 익은 선거제였다. 이른바 ‘준준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발생한 폐해다. 가능성을 폐해로 전환한 사례를 더불어민주당이 만든 것이다.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위성정당을 견제할 작지만 알차고 강력한 정당들이 주목받고 활동할 수 있다. 기성 양당정치를 견제할 수 있는 다당제 구조로 가는 게 이상적이다. 지금의 폐해를 견제하기 위해 없던 일로 만들고 다시 양당제 사회로 갈 수는 없다. 그건 퇴행이다.”

-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사람들이 이미 마스크를 쓰면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경제시스템보다 전환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이미 체감할 것이다. 지난 8년간 국회 담장 밖에서 주장해 온 정당이 녹색당이다. 노동자도 수많은 교차성을 갖고 있다. 어머니였다가 딸이었다가 노동자였다가 시민이기도 하다. 기후위기가 이미 눈앞에 보이는 지금 분명히 사회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핵발전소를 당장 닫으면 노동자는 어떻게 하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노동자가 빠르게 전직하도록 돕는 역할이 그 지역사회 몫으로 돌아온다. 코로나19 위기로 공항노동자 등 수많은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다.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할 산업이 있고, 오히려 더 커질 산업이 있다. 노동과 녹색이 녹색일자리를 만들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기후위기·정치위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을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런 변화의 주체로 나서 달라. 노동과 녹색이 이제 만날 때가 됐다. 이제 사회전환을 위해 이야기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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