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0. 3. 5. 2019구합58186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기존 대법원 태도를 따른 판결

대상판결은 계약직 노동자의 계약갱신 기대권과, 갱신거절의 합리성과 관련해 기존 대법원 판례 태도를 원칙으로 삼은 것이다.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무적 동기로 무리하게 계약갱신 거절

이 사건 사실관계에 있어서 특이점은 원고 회사가 참가인 노동자들에게 부여한 계약갱신 기대의 근거들이 비교적 명확함에도, 이전 경영진이 부여한 계약갱신 기대권을 현 경영진 체제에서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무적 동기에 의해 무리하게 계약갱신을 거절한 부분에 있다.

즉 현 경영진은 취임 이후 원고 회사 업무에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상시·계속 사용의 필요성이 상당한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해고하기 위해 졸속적인 ‘특별채용’ 절차를 거쳐 총 11명 중 1명만을 신규채용하고 10명을 해고했다.

해고 과정에 대해 대상판결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를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원고는 특별채용계획 확정도 전에 평가실시 일정을 통보하고 사실상 신규채용이라는 사실도 알려 주지 않는 등 이 사건 특별채용 절차는 시작부터 졸속적이었다는 점 ② 신규채용과 달리 특별채용의 경우 전체 계획도 전혀 밝힌 바 없는 점 ③ 원고 회사 인사규정 10조에서는 특별채용 대상자를 “근무성적이 우수한 자”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대상자 선정을 위한 평가도 전혀 하지 않은 점 ④ 시험문제와 일정·장소·면접관이 신규채용과 동일했던 점 ⑤ 내부적으로 미리 선발인원을 신규채용 2명, 정규직 전환 1명으로 정해 놓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점 등이 이 사건 특별채용 절차의 명백한 하자다.

즉 원고는 계약갱신에 정당한 기대권이 있는 참가인들에 대해 사전동의 절차를 거치거나 구체적인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채 재계약 절차 또는 특별채용 절차가 아닌 신규채용 절차를 진행했는바, 이는 정당한 계약갱신 기대권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이었다.

결국 대상판결은 참가인들에 대해 실시된 사실상 신규채용 절차는 객관성·합리성·공정성이 결여된 것으로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진행된 이 사건 계약갱신 거절은 부당한 해고로 판단했다.

우선고용의무 위반, 판단근거에서 배제돼

이 사건 부당해고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5조 위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부분 법리는 대상판결의 판단근거에서 배제된 점이 다소 아쉽다.


참고로 대법원 2016. 11. 10. 선고 2014두45765 판결은 대상판결 사건과 마찬가지로 계약직 노동자의 계약갱신 기대권을 근거로 해고의 부당성을 지적한 판결인데, 판결이유에서 기간제법 5조 우선고용의무 위반의 점에 대해서도 설시했다.

대법원 2016. 11. 10. 선고 2014두45765 판결문 중 발췌

기간제법 취지를 오해한 원고의 귀책 확인

원고 회사는 시종 기간제법 취지가 마치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노동유연성을 명확히 보장하기 위함인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상당히 위험한 오해였다는 점이 판결을 통해 확인됐다. 위 소개한 대법원 판결에서는 기간제법 취지를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방지함”이라고 한다.


대법원 2016. 11. 10. 선고 2014두45765 판결문 중 발췌

이 사건은 계속·상시고용 필요성이 있는 아나운서 직군을, 순수한 한시적 필요성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기간제 노동자로 채용하고 정규직 전환 기대권을 부여했음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계약갱신을 거절하고 정규직 전환 기대권을 박탈해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이야말로 대법원이 말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계약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정규직 전환 기대권’과 ‘계약갱신 기대권’은 같은 개념

원고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고 해서 마치 ‘정규직 전환 기대권’과 ‘계약갱신 기대권’이 구별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정규직 전환 기대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요건이 필요한 것처럼 호도했다. 그러나 이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대상판결은 거듭 확인했다.

정규직 전환 기대권과 계약갱신 기대권은 같은 개념이다. 우리 대법원과 대상판결은 계약이 갱신되자 근속기간 2년을 초과하는 바람에 기간제법 4조2항1)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결과가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라 표현했을 뿐이다.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든 계약갱신 기대권이든 동일한 구성요건에 의해 인정된다. 향후 계약갱신 기대권이 쟁점이 돼 법률다툼을 하는 당사자들은 이 점을 유념해 의미 없는 공격 방어방법을 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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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4조(기간제근로자의 사용) ② 사용자가 1항 단서의 사유가 없거나 소멸됐음에도 불구하고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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