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민 관악구 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

‘노동복지’란 말은 듣는 이에게 크게 두 가지 뜻으로 들린다. ‘노동자를 위한 복지’라는 말과 ‘일자리 그 자체’ 둘 중 하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될수록 후자로 이해한 사람들의 상담 전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차라리 무급휴직이 낫지”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일자리를 장기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된다. 얼마 전 한 50대 후반 남성은 내게 하소연했다.

“안 그래도 일용직 일자리 얻기가 힘든데 요새 더 힘들어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러 갔어요. 처음에 엄마가 내 부양의무자라서 안 된다고 하데. 다행히 아들이 3급 장애라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이 안 돼서 가능하다는 거야. 혹시 한 달 소득이 얼마냐고 묻는데, 동사무소가 이제 거기 여자들이 많잖아. 그래서 내가 체면도 있고 해서 벌이를 좀 부풀려서 이야기했더니 그걸 안 해 주는 거요, 글쎄.”

도와줄 방안이 마땅하지 않은 상담을 마무리하고 나서 이 시국에 ‘일자리를 잃은, 혹은 잃을 위기의’ 사람과 ‘일자리가 원래 없던’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한 것일까 고민해 봤다. 그리고 후자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이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부양의무제라니. 코로나19 시국에 부양‘의무’는 차라리 부양‘연좌’에 가깝다.

최근 ‘재난기본소득’ 논의가 한창이다. 서울시는 중위소득 100% 이하를 기준으로 한 긴급복지기금을, 특히 경기도는 모든 도민에게 10만원씩 주는 기본소득 추진을 발표했다. 특히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주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복지 사각지대 해소 대안으로 기본소득 담론이 적극적으로 소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상한 상황’에서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김경수 경남도지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왜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이었던 ‘부양의무제 폐지’는 이야기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기간 당시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폐지로 추가 소요되는 재원 규모는 8조~10조원이 운위됐으며 이마저도 과다 추계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당시 재원을 이유로 “단계적 실행”이 공약된 바 있다.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신음하는 상황에 논쟁적인 제도를 말하는 것은 선명성 선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복지 사각지대에 실제 얼마만큼의 혜택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사회보장을 위한 기준 중위소득 기준을 넘어 소득 하위 70%의 기준이 이야기되는데, 이에 대해 “왜 상위 30%는 국가의 보호 밖에 있는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혜훈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부자가 죄지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과 수사가 “진보”라고 인식되는 것에 사실 혼란스럽다. 진보는 부자의 재산이 아니라 부자의 사회연대를 추구하는 진영 아니었던가.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엊그제 부모님이 통화를 하면서 나에게 말해 줬다. 몇 달 전부터 일거리가 떨어져서 주민센터에 찾아가, 기초연금 받을 나이는 아직 안 됐고 국민연금도 받을 돈이 얼마 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이나 다른 혜택받을 복지제도가 없냐고 물어봤는데 부양의무자가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참고로 나는 외아들이다.

‘기본소득 담론’이야말로 ‘20 대 80’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한 긴급재난지원생활비는 소요예산이 18조원으로 추산돼 부양의무제 전면폐지시 추산 재원보다 훨씬 많았다. 대통령이 말한 대선공약도 재원 마련을 이유로 ‘단계적 실행’을 한다면서 아직도 부양의무제를 전면폐지하지 못하는 마당에 ‘모두에게 주는’ 소득은 곧장 주요 담론이 된다. 기본소득은 부자와 중산층도 받는 돈이지만 부양의무제 전면폐지는 그들과 상관없는 일이니까. 결국 의지의 문제다.

‘비상한 상황’에 특단의 대책을 말하기 이전에 3년 전 약속한 공약부터 실행해 놓고 다음 대책을 말한다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도 조금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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