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원래대로라면 21대 총선은 많은 기대와 열망이 담길 선거였다. 보수 우위의 붕괴라는 2016~2018년의 정치적 대격변기를 거친 후의 첫 선거고,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를 오가게 했던 입법권력의 교체 기회였다. 게다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현 집권세력도 한계를 드러냈고, 양당 구조 타파에 대한 열망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주목도 높아졌다. 때마침 이뤄진 선거제도 개혁도 기회라고만 여겨졌다. 그러나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위성정당 논란은 의석수 계산식만 남겨 버렸고, 때마침 전 지구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선거운동을 넘어 온 사회를 정지시켰다. 이 모든 이슈를 뚫고 나온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한국 사회에 오래도록 누적된 성착취 구조를 드러낸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어지러웠던 지난 두어 달 동안 답답함과 분노, 허탈함은 쌓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이기도,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들은 홀로 남겨져 버렸다. 내가 가진 표 한 장이 어떠한 상호작용도 없이 그냥 한 표가 된 것이다. 불평등 해결 총선, n번방 해결 총선이 아니라 코로나19 총선, 위성정당 총선만 남아 버렸다. 그 어떤 공약도 거의 논쟁조차 되지 않는 이상한 선거다. 여당의 첫 공약 발표는 공공 와이파이였고, 보수야당은 철 지난 줄푸세만 변주한다. 탄핵 이후 확인되고 심화되는 문제에 대한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를 외면한다고 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겪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청년유니온을 비롯한 40여개 청년단체가 결성한 2020총선청년네트워크에서 이러한 상황에서도 다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9개의 정책요구안을 발표한 것도 그런 이유다. 특히 불평등세와 소득보험 도입과 같이 처음 제기하는 새로운 의제도 포함했다.

불평등세 도입은 소득세율 누진성 강화와 보유세 2배 인상 등을 골자로 한다. 불평등세라고 명명했지만 증세라는 의제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서 재원 조달 차원에서 이야기하던 것과는 달리, 세습 불평등과 소득격차 그 자체를 해소하기 위해서 증세를 하자는 제안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 필요성을 더욱 확인할 수 있다. 소위 고부가가치와 높은 소득, 그리고 높은 자산가치가 유지되도록 하는 도시화, 나아가 세계화라는 체제 자체가 얼마나 공공의 자원 위에서 유지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많은 것들이 멈추더라도 사회가 굴러가게 하는 것은 배달·청소·경비 등 열악한 저임금 노동에 처해 있는 노동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격차에 대한 적극적인 재분배가 필요하다.

소득보험은 자발적 퇴사자에 이어서 고용안전망의 대표적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고용상태가 0과 1로 구별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것은 소득의 불안정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에 과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소득이 이전 기간 대비 절반 아래로 떨어졌을 경우 소득 감소분의 특정 비율을 보전해 주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이들의 불안정성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참여한 사업 자체가 취소돼도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다. 이처럼 취약할수록 고용안전망에 반드시 포괄돼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19가 단순히 지나가고 마는 전염병이 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크고, 사회·경제·산업 전반에 그 파급이 갈 가능성이 높다. 만일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고용안전망을 폭넓고 두텁게 까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많은 시민이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상황에서도 실종돼 버린 정치의 역할을 찾아 헤매고 있다. 2020총선청년네트워크가 단 3일 만에 모은 500여명의 청년 유권자들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열흘 남짓 남은 기간이라도 정치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총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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