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고, 전문가들은 사태가 금세 진정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감염병은 일상을 흔들고 생명까지 위협한다. 환자 지근거리에서 온몸으로 감염병과 맞섰던, 지금도 맞서고 있는 의료노동자들 눈에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어떻게 비쳤을까. 의료현장 노동자들이 실태와 과제를 보내왔다.<편집자>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우리에게는 ‘계획’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감염병 대응을 위한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계획이 전무했다. 20세기 스페인 독감을 소환해 내고야 만 21세기의 코로나19는 지역사회 감염이라는, 현재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감염병으로 창궐하고 있다.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하고 나서 70여일이 지나고, 그동안 정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교훈을 살려 다분히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감염병 초기 방역에 집중했던 시기에는 역학조사관 등 현장 검역인력 부족이 드러났고,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 중에도 중증환자 치료를 담당할 감염내과 의사나 호흡기내과 의사가 부재한 곳이 드러났고, 급속도로 환자가 발생한 대구·경북지역에서는 감염환자를 치료하고 간호할 의사·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함이 드러났다. 시간을 더 벌지 못하고 하룻밤 사이에 터져 버린 지역사회 감염은 비로소 우리의 미약한 감염병 대응 능력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줬다.

메르스 사태를 지나오면서 가장 급성장한 것은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인 것 같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각자의 책임을 다하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도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 의식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이 우왕좌왕할 때도, 보건의료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마스크 대란을 겪으면서도 국민은 차분히 기다려 줬다.

반면 보건의료인력의 현주소는 메르스의 교훈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하루 확진자가 800명을 넘기도 했던 2월 말부터 대구·경북지역에서는 환자를 입원시킬 병상이 부족해졌다. 자가격리를 하는 도중 사망하는 환자까지 발생하면서 경증과 중증환자를 구분해 더 중한 환자가 입원할 수 있도록 전담병원을 지정하고 입원실을 확보했다. 그러나 부족한 의사·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력은 전국에서 자원과 파견을 받아야만 했다. 감염병 환자 치료를 위한 필수교육과 훈련은 그 다음이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두 달이 넘도록 강행군 중이다. 보건의료인의 사명감으로 일상을 버리고, 감염병 공포와 육체적 피로를 뒤로 하고 환자 곁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들의 자발적 희생에 기대어 버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원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교훈을 바탕으로 감염병 예방과 대응에 필요한 보건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준비된 감염병 대응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정신병원·요양병원 등에서도 상시적으로 감염병 대응을 준비할 수 있도록 감염병 예방·관리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감염병 대응에 나설 보건의료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장기전이 될 수도 있는 감염병 대응을 이들의 희생과 봉사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공포와 피로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도록 최전선 인력을 교대해 줄 수 있는 인력 확보와 운영도 필요하다.

국가적 의료재난에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토대로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감염병 대응 필수인력을 양성하고 지원하자.

어떤 알 수 없는 감염병이 와도 꼭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감염병 사태에 직면했을 때는 “우리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