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믿음)

대상판결 : 창원지법 2020. 2. 21. 선고 2019노941 판결

1. 사건의 개요

노동절인 2017년 5월1일 오후 2시50분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800톤 골리앗크레인이 이동하던 중 32톤 지브형 타워크레인을 충격해 지브형 크레인의 메인지브와 와이어로프가 낙하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하청노동자 31명이 사상(사망 6명, 부상 25명)했다.

이 사건 사고에 대한 1심은 삼성중공업 소속 조선소장을 포함해 관리자들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점에 대해서도 삼성중공업과 조선소장 등이 자백하지 않은 안전조치의무·산업재해예방조치의무 위반에 관해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요컨대 1심은 이 사건 사고발생과 결과에 있어 삼성중공업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었다.

2. 판결의 요지

가. 대상판결은 1심 판결 중 조선소장을 포함해 관리자들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의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유죄로 판단했다.

피고인들이 크레인 중첩작업으로 인한 크레인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안전대책이나 세부적인 기준의 수립·건의·지휘·관리 및 감독을 하지 않은 점, 직·간접적으로 피고인들이 크레인 간 충돌을 예상했음에도 그 방지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 노동자를 지휘·감독하지 않은 것에 구체적인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판단했다.

즉 크레인 높이와 구조 등 현장 상황과 피고인들 진술에 나타난 여러 가지 정황을 봤을 때 피고인들이 크레인 간의 간섭 문제 및 충돌위험을 충분히 인지했거나 예상할 수 있었으며, 피고인들은 안전을 위해 신호수 배치 방법, 혼재작업시 작업 방법, 신호조정 방법, 작업일정 조정 등의 여러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고의 위험을 줄일 수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나. 1심은 이에 대해 피고인들이 위험성 평가를 했고, 이미 마련돼 있는 안전대책과 기준으로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취지에서 피고인들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위험회피를 위한 지침 마련 여부와 관련해 “넓게 보면 (기존에 존재하는) 위와 같은 규정이나 지침 속에 중첩지역 통과 절차 및 신호조정 방법도 포함돼 있다고 볼 여지가 적지 않다”고 하면서, 왜 이를 ‘넓게’ 해석해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또한 1심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 중 이례적으로 검사의 질문 부분을 인용하면서 사건담당 검사가 당시 규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질문했다는 점을 판단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안전대책 보강이 필요했다는 사고 관련자들의 진술은 책임을 미루는 동기로 진술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가정으로 배척했다.

나아가 1심은 “규정이나 지침은 그 존재만으로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결국 작업자들이 이를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해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현장 안전규정·지침 따위는 애초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지브크레인의 현장투입에 따라 피고인들이 새로운 위험을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위험성 평가를 새로이 하지 않은 점, 기존의 추상적인 안전대책과 기준이 이 사건·사고의 구체적인 위험회피를 위한 대책이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점을 들어 피고인들의 면책 범위를 실질적으로 무한히 확장한 1심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다. 1심은 지침 미비 등이 업무상 과실에 해당하려면 당대의 조선업계 수준에 따를 때 지침을 갖춰야 하는 것이 주의의무를 다한 것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여지 없이 증명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과실 판단의 일반 법리를 크게 벗어난 것이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1심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증명돼야 하는 것은 조선업계에 종사하는 일반적 보통인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주의 정도에 비춰 예견 가능성 및 위험의 회피가능성”이라며, 1심과 같이 판시할 경우 “동종업계 종사자 모두가 위험을 예상할 수 있고, 그 위험을 방지하거나 회피할 수 있음에도 규정이나 지침을 마련하지 않은 경우 어느 누구에게도 업무상 과실이 인정될 수 없는 결과가 돼 부당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라. 피고인들에게 이 사건·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관리·감독의무가 있는지와 관련해 1심은 삼성중공업의 규모가 거대함을 장황하게 나열하고, 사내의 계층적 업무구조가 7단계 이상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고에 직접 영향을 미친 노동자의 직상자만이 관리·감독의무를 질 뿐이라고 설시했다. 이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정면으로 승인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기업의 수직적 계층구조하에서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한은 상급관리·감독자들에게 있으므로,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안전관리 책무도 위 권한에 비례해 무겁다고 할 것이고 산업현장의 위험을 창출한 사업주에게 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안전대책을 마련할 법령상·조리상 주의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하고, 피고인들이 이를 해태한 이상 그러한 과실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3. 대상판결의 의미

대상판결은 삼성중공업 소속 조선소장과 중간관리자들의 업무상과실치사상의 혐의에 대해 이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비정상적으로 좁게 해석한 1심의 판단·논거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이를 유죄로 인정했다는 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1심 판결은 초지일관 산업재해와 산업안전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로 현장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을 전적으로 전가했다. 반면 대상판결은 관리·감독의무자들의 책임을 인정해 비정상을 정상화했다는 면에 그 의미가 있다.

다만 대상판결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점에 대해서는 1심 판단을 유지한 것은 여전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검사가 애당초 기소를 하지 않았거나,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방지 조치의 구체적인 주의의무 위반 사실을 공소사실에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거나, 고의적인 방치 등에 한해 사망의 결과에 대한 책임 귀속을 인정하는 종래 대법원의 해석론에 기인한 것으로, 대상판결만을 비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인다.

대상판결은 검사의 항소로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첨언해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자 지원단은 자칫 형식적으로 끝날 뻔한 항소심 절차에서 피해자를 대리해 위임장을 제출하며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고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1심에서 누락된 중요 증거자료를 검사를 통해 제출했다. 실제 대상판결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방법론상 이러한 접근은 다른 사건에 있어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지원단은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석유화학기업 토탈(Total)·테크닙(Technip)·에퀴노르(Equinor) 등 사고발생에 책임소재가 있는 다국적 기업 발주사들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정위반을 이유로 한 OECD NCP 제소를 진행했으며, 지난 25일 사건 당사자들 간의 주선(good office) 결정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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