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고, 전문가들은 사태가 금세 진정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감염병은 일상을 흔들고 생명까지 위협한다. 환자 지근거리에서 온몸으로 감염병과 맞섰던, 지금도 맞서고 있는 의료노동자들 눈에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어떻게 비쳤을까. 의료현장 노동자들이 실태와 과제를 보내왔다.<편집자>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지방의료원연합회장)

다시 공공의료가 화두다. 공공의료 최고단계로 일컬어지는 국민건강서비스(NHS)로 무장한 서유럽에서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최고의 유병률과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 재난적 감염병을 막는 데 공공의료가 정답인가라는 물음에 선뜻 답을 내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두 달을 돌아봤을 때 결국 공공의료 확충만이 감염병에 대항하는 올바른 길임을 알 수 있다.

질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신종 감염병 공포의 뿌리다. 적을 모르니 대책도 없는 재난상황에서 보건의료가 공공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뚜렷이 드러난다.

2014년 9월의 일이다. 추석연휴를 앞둔 인천의료원에 비상상황이 발생했다. 인천공항에서 한 나이지리아 여행객의 발열이 감지돼 인천의료원으로 이송이 이뤄졌다. 당시 서아프리카에서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나라에 따라 치사율이 90%에 다다르고, 치료제와 백신도 없으며 미세한 체액과 비말로도 전염되는 극히 위험한 감염병이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에게 발생한다. 병력을 묻고, 혈압과 체온을 재고, 검체를 채취하는 모든 과정에서 가장 앞에 선 사람은 공공병원인 인천의료원 간호사들이었다. 간호사들이 누구랄 것 없이 서로 먼저 위험을 무릅쓰겠다고 나섰다. 선후배 간호사들의 실랑이(?)를 보며 감동에 가슴이 저렸다. 보건의료가 공공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웃을 위하는 마음이 없는 이기적 행위로는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윤을 떠난 공공의료를 통해 비로소 우리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공공성 부족은 항상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재난적 감염병과 공공의료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는 혼자서 생존과 번식이 어려운 미생물의 속성에 기인한다. 바이러스는 적당한 숙주(사람)를 찾아야만 정착하고 번성한다. 따라서 사람 간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것이 발생한 전염병을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전염병이 발생한 지역 원천 차단은 극단적인 예다.

이 원칙을 위반해 발생한 재난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다. 호화로운 장식과 첨단 장비를 갖춘 유수의 상급종합병원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많은 환자·보호자를 한 병실에서 머물게 하는 시스템이 원인이었다. 다인실 운영으로 얻는 이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거리 두기를 포기한 결과였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2.6배의 급성기 병상을 가지고 있다. 반면 공공병상수는 10%에 불과하다. 전체 병상의 70%를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이 점유하고 있다. 작은 병원은 감염병 치료에 필수적인 장비·시설·인력을 갖추기 어렵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대부분의 공공병원은 병상을 모두 비우고 확진자 치료를 준비했다. 그럼에도 많은 환자들이 입원하지 못하고 대기 중에 악화된 불행을 경험했다. 재난시 동원 가능한 공공병원·시설과 공공의료 인력 부족이 낳은 결과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제2의 우한이라 비난받던 한국을 이제 세계가 주목한다. 메르스 사태의 뼈아픈 경험과 뛰어난 시민의식, 무엇보다 의료진의 자발적인 희생을 통해 가능했던 코로나19 수습 과정은 세계적인 모범으로 자리하는 중이다.

하지만 취약한 공공의료를 역할모델로 삼을 나라는 없다. 재난시 언제든 가동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공공병원을 늘리자는 논의를 구체화할 때다. 그래야 우리 의료가 행운과 국민의 열정페이에만 의존하지 않는, 진정한 세계의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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