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고, 전문가들은 사태가 금세 진정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감염병은 일상을 흔들고 생명까지 위협한다. 환자 지근거리에서 온몸으로 감염병과 맞섰던, 지금도 맞서고 있는 의료노동자들 눈에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어떻게 비쳤을까. 의료현장 노동자들이 실태와 과제를 보내왔다.<편집자>

 

백재중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과장

코로나19 유행으로 인류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염병은 국가·인종·성별·계급을 가리지 않지만, 사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민낯을 들춰내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곳곳에서 확인 중이다. 위기는 한편으로 이를 수정하고 만회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나같이 쉽지 않지만 피할 수도 없다.

방역당국이 신속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신뢰를 얻고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질병관리본부의 권한이나 재정·인력이 빈약해 최선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질병관리본부의 문제라기보다 이를 방기한 정치권의 문제다. 이번에 지방정부의 전염병 대응력이 도마에 올랐다. 일상적인 전염병 대응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전염병 대응은 공공병원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일반 환자 진료를 포기하면서 전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는 건 공공병원의 역할이기도 하다. 10% 안팎의 공공병원으로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진주의료원 폐쇄로 지역주민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공공병원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는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것이다.

청도대남병원 집단 발병과 사망 사건으로 그동안 시야에서 사라졌던 정신장애인의 끔직한 모습이 우리 앞으로 다가섰다. 활동 지원이 중단되면 생활이 멈출 수밖에 없는 중증장애인들의 절규도 들린다. 무료급식소·무료진료소에 의지해야 했던 사람들은 더 힘들어 한다. 5부제에 끼지도 못해 마스크 구하기도 어려운 예외 존재들인 미등록 이주민들도 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취약한 존재들의 생존이 더 위태로워졌다.

재택근무가 어려운 노동현장, 밀집돼 일하다 집단 발병한 콜센터 노동,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오히려 노동강도가 더해지는 택배·배달 노동. 노동이 멈춘 비정규직과 알바노동자들의 생계도 빠듯하다.

코로나19 유행에 혐오와 배제의 시선이 따라왔다. 초기 중국에 대한 혐오가 거세지면서 중국 동포들은 일자리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신천지 신자는 공공의 적이 됐고, 대구·경북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환자와 접촉자는 불가촉 존재가 됐다.

확진자의 동선 추적이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활동 반경이 공개되고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개인의 동선은 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가 되기도 했다.

지역사회도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재난상황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른다. 개인들은 ‘방콕’하거나 집과 직장만 오가고 있다. 회식도 모임도 사라졌다. 이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해 간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과제를 남겨 놓았다. 아직도 진행 중이니 어떤 과제가 더해질지 모르겠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애써 무시하던 문제들이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이게 모두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들이다. 전염병 유행이 지나도 제발 까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아하니 인간은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할 듯하다.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너무나 잘 알고 파고든다. 그래도 가만있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협동과 연대의 그물망을 치는 일이다. 그물망으로 사회의 구멍 난 곳을 때우고, 거리 두기로 벌어진 틈을 메우고 고립된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 그물망은 침몰하는 이웃들을 건져 올리고 무너지는 공동체를 복구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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